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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교육청이 이 사건을 계기로 관내 모든 학교 운동부의 폭력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상담 인력 확충, 기숙사 폐쇄회로(CC)TV 교체, 비상벨 설치 등의 조치도 발표했다. 그러나 누적된 폐습이요 고질적인 병폐가 이런 정도로 폭력이 근절되기는 어렵다.
지난 8월 말의 사건을 보자. 전남의 한 중학교 운동부 코치가 여중생을 수차례 폭행했다. 이 자체도 충격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여중생의 부모가 보고 있는 중에도 폭행을 반복했다. 코치는 “교육적 차원에서 부모 동의 아래 체벌”을 했다고 항변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중·고교 운동부의 폭력은 이 사회의 무한 경쟁을 압축해 놓은 것이다. 살벌한 경쟁 이외에는 그 무엇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적 상황, 그 축소판인 중·고교 운동부의 폭력 구조는 지도자와 학교장은 물론 부모들까지 묵인하고 눈물로 방조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많아야 두 명이고 때로는 한 명의 자녀밖에 갖지 않는 소가족 형태가 이 폭행을 방조하는 이유도 된다. 형제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오직 단독자로 성장해 사회에 진출하는데, 이럴수록 부모는 아이의 미래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부모가 보고 있는데도 폭행이 가해지고 심지어는 부모들이 ‘강한’ 지도자를 선호한다. 그래서 관중이 거의 없는 중·고교 대회장에 가보면 지도자와 학부모가 동시다발적으로 온갖 욕설을 섞어가며 어린 학생들을 무섭게 몰아치는 걸 볼 수 있다.
우애와 공존의 성장 경험을 거의 갖지 못한 아이들은, 그릇된 지도자의 악의에 찬 폭력 구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훗날 직업 선수가 되거나 사회로 진출했을 때도 ‘다른 삶’의 방향과 방식을 겪어보지 못한 탓에 비참하게도 다시 폭력의 위계 속으로 걸어가게 된다.
이 지도자들 역시 강력한 ‘갑’, 즉 학교 당국의 서열 구조의 맨 아래에 위치하게 되는데,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관계를 비정상적으로라도 유지하기 위하여 오직 큰 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것을 방책으로 삼기 마련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운동부를 일상 폭력이 가능한 위계서열의 구조로 고착시켜버리게 된다. 학교 당국 역시 담장 밖으로 큰 소문만 나지 않으면 쉬쉬 하며 이 구조를 묵인해버리고 오직 큰 대회 입상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거나 성취하는 식으로 운영해 왔다.
이런 판국이니, 당장 상담 인력 확충이나 시설 개선이라도 해야겠지만, 역시 문제 해결의 열쇠는 그 문제 안에 있는 법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전국학교스포츠클럽대회가 좋은 예다. 엘리트 선수 육성 대신 일반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방과후 스포츠 클럽 활동, 토요 스포츠데이, 창의적 체험활동 등이 그것이다. 학교장이 반드시 학생들의 신체 활동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2012년의 학교체육진흥법도 효력을 낳고 있다. 학교장들이 조금만 인식을 바꾸면 얼마든지 새로운 방향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예산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선 학교 운동부를 평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마침 서울시교육청은 의미 있는 발표를 했다. 지난 10월에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이 순위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기존 방식과는 다른 관점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비록 경기도에 이어 서울시가 종합 2위를 차지(고등부 기준)했지만 이 성적을 시·도별 학생 수, 학교 수, 1인당 총생산, 재정자립도 등에 적용하면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학생 수로 비교하면 세종시와 강원, 충북이 상위권이고 서울은 16위다. 학교 수와 금메달의 관계로 보면 대전, 제주, 울산이 상위권이고 서울은 9위다. 재정자립도와 순위의 관계에서도 서울은 9위에 머무른다. 1인당 총생산과 연관하였을 때에 비로소 서울은 3위가 된다.
이런 분석은, 덮어놓고 1위요 금메달이면 무조건 과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성적과 다양한 삶의 지표들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서울시교육청 스스로 연구하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다양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더 많은 선수들과 팀들이 좀 더 공정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메달 획득과 상위 성적이 대단히 현실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으로 학교장의 평가가 달라지고 지도자의 고용이 갱신되고 운동부 학생들의 진학이 결정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폭력 구조가 형성되고 눈물의 묵인이 발생한다. 극소수의 아이들이 이 폭력 구조의 명분이 되어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만 대다수는 눈물과 공포의 밤을 보내야만 한다. 이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평가하고 보상하는 방식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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