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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서 ‘서말구’란 이름과
‘10초34’란 기록처럼 익숙한 단어도 드물 것이다. 한데 썩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10초34’라는 숫자는 심하게 말하면
육상 발전의 발목을 부여잡는 ‘저주의 숫자’이자 반드시 깨야 할 ‘비원(悲願)의 기록’쯤으로 여겨졌다.
서 선수가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에서 세운 육상 100m 기록인 10초34가 무려 31년간이나 깨지지 않았으니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기록 보유자는 따로 있었다. 1966년 정기선 선수가 세운 10초3이었다. 서 선수도
타이기록(10초3)만 갖고 있을 뿐 정기선의 기록을 끝내 깨지는 못했다. 궁금증이 생긴다. 왜 서말구 선수의 유니버시아드
기록(10초34)이 0.04초 모자란데도 한국기록으로 공인됐을까.
31년간 100미터 한국 기록을 보유했던 서말구 전 육상국가대표 감독_경향DB
당시 세계육상계가 도입한 전자계측의 기록이라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육상계는 수동기록을 전자계시로 환산할 때 통상
0.20~0.24초 더한다. 서 선수의 유니버시아드 전자기록을 수동으로 바꾸면 10초10쯤 될 것이다. 서 선수에게는 무한한
영예였을 10초34 기록은 갈수록 한국 육상의 정체를 상징해주는 숫자가 됐다. 예를 들어 1939년 김유택이 조선-관서
학생대항전에서 10초5를 찍었다. 정기선의 1966년 수동기록으로 비교하면 0.2초 앞당기는 데 27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계 육상의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다. 제시 오웬스(미국)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록은 10초2였다. 아르민
하리(독일)가 1960년 10초F를 끊었으니 0.2초 단축에 24년이 걸린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10초 이내로 들어오자
기록단축은 더 힘들어졌다. 짐 하인스(미국)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9초95를 마크했다.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2009년 기록이 9초58이었으니 41년 만에 0.37초 단축했을 뿐이다.
그
보다 한국 육상의 발전속도가 워낙 더뎠기에 서말구 선수와, 그의 기록이 대접받지 못한 것이다. 이제 서 선수의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은 없다. 2010년 이후 후배인 김국영이 3번이나 한국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5년 만에 서 선수의 기록을
0.18초 앞당겼으니 괄목상대라 할 수 있다. 지난 30일 별세한 서말구 선수의 명복을 빈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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