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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학태 | 전남대 교수·정치학 

최근 통합진보당이 이번 총선에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공동공약으로 하자”고 민주통합당에 제안했다. 민주통합당이 정책을 ‘좌클릭’해 가는 바람에 통합진보당의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터라 의미 있는 제안으로 여겨진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은 연일 공천혁명을 다짐한다. 물론 인적 쇄신은 정치혁신의 한 해법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치명적 아킬레스건은 인물이 아니라 구조이다. 정치구조에 칼을 대지 않은 채 제 아무리 정교한 상향식 시스템 공천을 통해 천하의 인재로 ‘바꿔 봐야 그놈이 그놈’이라는 게 성난 일반 국민의 정서일 것이다. 선거 때마다 세계 유례가 없는 ‘물갈이’ 공천이 되곤 했으나 하면 할수록 옛 모습을 꼭 빼 닮아가는 한국 정치판이 아니던가.

 
‘87년 체제’는 소선거구 다수대표 선거제도, 거대 양당구도, 집권당 단독정부에 의해 작동된다. 이 제도조합은 무한경쟁-승자권력독식-정치적 양극화를 구조화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의 국회의원들은 속절없이 타락의 길을 걷는다. 국가재정과 지역주민 사이의 정치 브로커 역할에 충실한 그들은 협소한 지역 토건사업 유치경쟁에 목을 맨다. 전 국민적 이해관계인 복지·교육·의료 등 사회개발에 대한 관심은 부차적이다. 작금 두 당의 ‘증세 없는 복지경쟁’은 국민들의 헛배만 부르게 한 정치적 레토릭에 가깝다. 거대 양당정치 구조 하에서 보편적 복지체제를 갖춘 나라는 이 지구촌에 없다. 경제시장이 재벌 대기업에 독과점되면 기업생태계가 파괴된다. 정치시장도 ‘재벌급’ 두 거대 정당에 독과점되면 정당생태계는 무너진다. 한나라당 대 민주통합당. ‘안철수 신드롬’은 거대 양당의 ‘오월동주 뱃놀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극도 피로감에서 비롯된다. 거대 양당의 정치 카르텔로는 우리 사회의 다종다양한 가치와 이해를 담아내지 못한다. 현 정치구조 하에서 설령 민주통합당이 집권해도 재벌개혁과 보편적 복지국가로 집약되는 경제민주화 공약은 번지르르한 말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이 좌파정책·세금폭탄·복지포퓰리즘 프레임을 동원하며 결사항전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집권당의 날치기통과 대 야당의 장외투쟁이 일상화되는 정치적 재앙을 상상해 보라.
 

‘한국 정치개혁, 비례대표제 강화가 급선무다’ 토론회 l 출처 : 경향DB


정치구조의 혁신은 선거제도 개혁에서 그 단서를 찾아야 한다. 선거제도야말로 정치구조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지렛대이다. 한국 정치구조 혁신의 첫 단추는 독일식 비례대표제 채택이다. 이 선거제도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여 균형 잡힌 좌파-중도-우파 불록의 다당제를 구조화한다. 과반 의석을 넘는 패권 정당의 출현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의회·정부 차원에서 정당들의 교차 파트너십인 연합정치가 제도화된다. 즉 정당 간 정책조율과 정책교환 기제의 작동이 일상화·습관화된다. 특히 중도정당이 좌·우 블록을 넘나들며 완충적인 균형 추 역할을 한다. 이념적 블록을 뛰어넘는 연합정치는 노사정 대타협과 제도적으로 맞물리면서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구조화한다. 유럽 정치 및 브라질 정치가 이를 웅변한다.

기대와 바람이 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핵심 고리로 하는 선거협약을 체결하여 총선에 출정하기를. 시민정치운동도 여기에 동참하는 ‘비례대표제 동맹(PR연대)’ 결성을. 이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은 정권탈환만을 위해 선거공학적 ‘잔머리’를 굴리는 정치적 탐욕을 자제하라. 통합진보당도 무리수를 두지 말고 바쁠수록 돌아가는 성숙한 지혜를 보여라.

한국정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한국 정치패러다임을 교체하여 ‘포스트 87년체제’의 해뜨는 지평선을 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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