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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비교문학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의 얼토당토않은 일들을 자꾸 접하다 보면 정신이 멀쩡한 사람도 흰소리를 하게 되는가 보다. 요즘처럼 검찰이 채신머리없이 좌충우돌하는 꼴을 볼라 치면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 자락 떠올라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설날이었다. 세배를 마치고 두둑해진 호주머니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이 마을회관 마당 양지 바른 곳에서 팽이치기를 하고, 동전 따먹기를 하던 오전이었을 게다. 나는 그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싸움을 해야만 했다. 설빔으로 일 년에 한 번 입을 수 있는 새 옷을 입고 주먹질을 하고 심하면 상대와 뒤엉켜 흙바닥에 뒹굴어야 하는데, 타고난 싸움꾼이 아닌 이상 정초부터 드잡이를 즐길 꼬맹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촌놈 자존심이 걸린 일전을 벌여야 했다.
상대는 나와 동갑인 도회지 아이로 할아버지 댁에 설을 쇠러 왔다가 재수 없이 사촌형들의 부추김에 꾀여 싸움에 휘말려들었다. 자기의 사촌이 이길 거라 믿은 철딱서니 없는 동네 형은 나와 그 아이의 주먹을 번갈아 내지르며 꼬맹이들의 전의에 불을 댕겼다. 예닐곱 명의 동네 또래를 대표해 싸운 나로서는 쉽게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었다. 하지만 막상 싸움의 뚜껑을 열고 보니 걔는 내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선제공격한 나의 오른손 한방과 다리걸기에 넘어져 그가 나뒹굴었다. 그렇게 싸움이 끝난 걸로 판단하고 방심한 사이에 그는 필살기로 일격을 가했다. 땅에 벌렁 나자빠진 그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입안 가득 씹고 있던 껌을 내 머리카락에 붙여 문지른 것이었다. 싸움엔 지지 않았지만 ‘껌’이 머리에 ‘찰싹’ 붙어 ‘스타일’이 사정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지난 정권을 욕보이고 정당한 주장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나대다가 깨어지는 깜냥을 보면서 ‘껌’이 머리카락에 ‘찰싹’ 붙었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린 까닭은, 애꿎은 사냥감을 골라 ‘껌처럼 찰싹 붙어’ 비열하게 물어뜯는 그들의 꼬락서니에 ‘껌찰’ 이상의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의 전당대회 돈 살포를 억지로 떠밀려 수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보여준 검찰의 무능과 굴욕에 얼굴이 화끈거릴 따름이다. 드러난 증거만으로도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여당의 피의사실은 애써 묻어두고, 야당의 전당대회장에서 한 정치지망생이 돌린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돈봉투로 내몬 ‘껌찰’의 망나니짓을 이대로 묵과해서는 안된다.
경향신문DB
그렇게 일종의 자학증에 빠진 ‘껌찰’을 누군들 ‘발가락 사이의 때’만큼이라도 여기겠는가? 당장 이상득의 적반하장의 술수를 보라. 보좌관과 경리직원이 관리하던 구린내 나는 돈을 갑자기 차명계좌에 묻어둔 자신의 돈이라고 우기는 이상득의 안중에 검찰은 ‘껌찰’도 아니다.
동생의 ‘완벽한 도덕성 타령’이 한갓 말장난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자신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마당에 이상득이 파렴치하고 노회한 정객이라는 욕을 먹어도 돈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선택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그 집안 내력인지도 모른다. “금융실명제나 공직자윤리법 위반에 대한 처벌이 현실적으로 가볍기에 그 길을 택했다. 너희 껌찰이 대통령의 형인 나를 어쩔 건데?”라는 완전히 ‘배 째라’는 식이다.
동생의 ‘완벽한 도덕성 타령’이 한갓 말장난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자신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마당에 이상득이 파렴치하고 노회한 정객이라는 욕을 먹어도 돈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선택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그 집안 내력인지도 모른다. “금융실명제나 공직자윤리법 위반에 대한 처벌이 현실적으로 가볍기에 그 길을 택했다. 너희 껌찰이 대통령의 형인 나를 어쩔 건데?”라는 완전히 ‘배 째라’는 식이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은 말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믿고, 잘 사는 것이 어떤 형태의 삶인지에 대해서는 별달리 생각해 보지도 않고 오로지 ‘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는 말에 ‘필이 꽂혀’ 두 눈 질끈 감고 찍었다고.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헤집어 놓은 세상엔 ‘사람이 대접받는 질서개념’이 없고 오직 돈만이 설치는 몰상식이 난무하기에, 세월은 아깝지만 빨리 작금의 치세를 종결시키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재건하고픈 사람들은 분주한 새봄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헤집어 놓은 세상엔 ‘사람이 대접받는 질서개념’이 없고 오직 돈만이 설치는 몰상식이 난무하기에, 세월은 아깝지만 빨리 작금의 치세를 종결시키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재건하고픈 사람들은 분주한 새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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