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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안되면 보좌관이라도 만나기 위해 의원실을 누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는 주권자들이 주권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질 것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보험외판원처럼, 옹송그리며, 고개를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습니다. 어르신들과 일정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올 때마다 저는 진한 비애를,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수십 번 국회를 다녔지만, 단 한번도 이런 감정 속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밀양 초고압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씨가 최근에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며 쓴 ‘출마의 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계삼은 몇 해 전까지는 고등학교 교사였으나 뜻한 바 있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새 삶을 준비하던 중, 송전탑 건설공사 때문에 삶터를 잃게 된 한 연로한 농민이 분신자결을 하는 충격적인 사태에 마주쳤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일은 접어두고 피해주민들과 함께 송전탑 공사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고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외롭고, 고통스러운 싸움을 계속해왔다. 그 과정에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부조리, 불합리, 부도덕성으로 점철되어 있는 송전탑 문제의 진실을 국회의원들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수십 번’이나 국회를 찾았다.

그러나 의원나리들은 흔히 시골의 ‘무지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운명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들은 의원실로 찾아온 시골사람들을 친절하게 맞아주기는커녕 굴욕감을 안겨주기 일쑤였다. 이계삼은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 앞에서 이 나라의 ‘주권자’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다고 쓰고 있다. 이계삼의 글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짐작하건대 이것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공통적인 태도일 것이다(기억하기도 싫지만,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 어떤 법안 때문에 의원회관을 며칠 방문해야 했던 나 자신도 이와 유사한 불쾌한 경험을 했다).

오늘날 이 나라 정치의 근본문제는 정치가들이 ‘주권자’들의 절실한 인간적 혹은 생활상의 요구에 대하여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는 나라에서 선거를 통해 뽑힌 통치자, 정치가들이 국민 혹은 유권자들의 절실한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기이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서도 그들이 임기 내내 하는 일이란 오로지 다음 선거에서의 재선을 위한 궁리와 술책이다. 유권자들의 절실한 요구를 무시하고 반응을 하지도 않으면서, 또다시 선거에서 이길 궁리를 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게 지금 이 나라의 정치판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심히 불합리한 선거제도 때문이다. 소선거구 지역구 중심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제도하에서는 양당체제를 벗어날 수 없고, 양당 소속 정치인들에게는 그들이 ‘정치가계급’으로서 누리는 특권의 영속화가 늘 최우선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선거는 이른바 망국적인 지역주의와 강력히 결합되어 있다. 지역주의에 깊이 침윤된 선거풍토 속에서는 입후보자의 자질이나 공적에 관계없이 ‘묻지 마’ 투표가 횡행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당선 혹은 재선을 꿈꾸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권자’ 혹은 ‘실력자’에 대한 절대적 충성이다. (자신의 지역구 사람들도 아닌) 하찮은 무지렁이들한테 관심을 기울여봤자 별 소득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거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돈이다. 선거에서 이기자면 우선 지명도가 높아야 하지만, 지명도를 보증하는 사회적 성공, 출세, 업적 등등은 불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돈(혹은 부패한 정신) 없이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지식인 사회에서 흔히 운위되는 대의제민주주의의 위기란 별 게 아니다. 오늘날 돈을 가진 자들에 의해 지배·통제되는 선거는 기득권자들의 영구집권을 돕는 메커니즘 이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정치가 공익이 아니라 (재벌과 부유층, 기득권층의) 사익에 봉사하는 도구로 변질·타락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공화주의 정신의 완벽한 결여이다. 공화주의 정신이란 국가가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공유물이라는 인식에 투철한 정신이다. 비단 물질적인 재산뿐만 아니다. 공화체제는 그 구성원들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기본적으로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옹호하는 정치체제이다.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_AP연합뉴스


공화주의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려면 금년 3월1일에 퇴임한 전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의 예를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재임 중 극히 소박하고 파격적인 생활방식과 지혜로운 국가운영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퇴임 직전에는 한국의 수구언론까지 그에 관한 기사를 썼다).

예를 들어, 그는 대통령관저가 너무 크다고 노숙자들에게 내주고 자신과 아내는 교외의 작은 농가에서 기거하며, 봉급의 대부분을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출퇴근 시에는 관용차가 아니라 오래된 폭스바겐 비틀스를 직접 운전하며, 찾아온 손님들에게는 손수 차를 끓여 내놓곤 했다. ‘정치적 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이런 행동은 실은 그의 공화주의적 신념에 완전히 부합하는 행동이었다. 그는 정치가는 자기가 대표하는 국민들의 다수와 같은 수준과 방식으로 생활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는 기후변화도, 환경파괴도, 전쟁위협도 아니고, 정치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대부분의 정치가는 지위가 높아지면 갑자기 왕이 되려 하고, “붉은 카펫과 자신을 받들어 모시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공화주의 정신을 망각해버린다. 즉 선출된 임시적 공복일 뿐이라는 자각을 결여한 정치가들 때문에 오늘의 정치가 위기에 처했고, 세계가 커다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넥타이라는 헝겊조각을 매는 것을 싫어하고, 빈민가의 소년소녀들이 각자의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는지 아닌지에 관심이 많았던 무히카 대통령은 취임 때보다도 퇴임 시에 국민들로부터 훨씬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 퇴임 후 그는 지금껏 살던 집에서 화훼농사를 지으며 농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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