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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於富村豪奢街(귀어부촌호사가)

尋非常口於陋巷(심비상구어루항)

“부자 동네 호사한 거리에서 돌아와

누추한 뒷골목에서 비상구를 찾네”

아파트 후미진 담벼락 아래에 누가 버렸을까, 약간은 때가 낀 흰 페인트 판자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걸 사진 찍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사진을 보며 짧은 한시 짓는다. 그리고 큼지마악하게 출력해서

 

그 뒷골목 풍경에 어울릴 글씨를 쓴다. 그리고, 반(反)과 산(産)을 새긴 스탬프와 내 이름을 새긴 낙관을 찍는다.

“반산업”의 내 붓글 시리즈라는 뜻이다. 거기다 사채 업체 명함을 한 장 붙여 내 얘기를 끝낸다.

(난 저런 명함을 수십 장이나 가지고 있다. 대개, 요즈음 우리집 현관 앞이나 동네 길거리에서 주운 것들이다. 흔하다.)

 

몇 년 전에 ‘비상구’라는 사진전을 한 일이 있다.

문명 부적응자는 끝없이 비상구를 찾아 헤매고 결국은, 없다.

이 산업 문명은 열외도, 기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가혹하다.

 

어쨌든, 나는 저 찾을 심(尋)자를 좋아한다.

참 좋아한다.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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