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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어찌 다루어야 할까. 특히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갈랐던, 그래서 감당키 어려운 분노와 슬픔이 배어 있는 참혹하고도 처절했던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사실과 진실에 입각해서?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증거에 입각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해냄으로써? 그것은 어떻게 찾아내고 판명하는가? 인류문명의 산물인 과학과 보편의 관점으로? 대체 무엇이 과학이고 보편인가? 그것은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보수가? 아니면 진보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답할 능력이 없다. 다만 역사를 몇 가지 ‘목적’에 걸맞은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부당하게 희생시키는 범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목적. 불가피했다는 논리로도 사람들에 대한 추악한 폭력과 억압과 차별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할 목적. 서로가 연대하고 협력할 때에만 소수 강자의 편취를 막아내고 생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배울 목적. 주류와 영웅이 돋보이는 역사, 심지어 정당치 못한 강자의 승리가 주를 이루는 역사라 할지라도 그 이면과 저변에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과 패배를 감수하는 ‘용기 있는 반역자들’이 존재했음을 알릴 목적. 그래서 지난 시간의 흐름 끝에 놓여 있는 현재의 처지를 이해하고, 시공간을 관통해 서로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힘과 지혜를 얻을 목적. 이것이 역사를 다루는 이유이자, 역사를 다루는 방식을 내올 목적이다.
나라와 사람의 품격은 역사를 어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시간의 살핌 속에서 옳고 그름과 맞고 틀림을 가늠하는 기준을 찾아낼 감각을 회복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또 인간의 나약함과 인류문명의 과오를 확인하며 인류애를 갖고 오만과 편견을 벗어날 반전의 계기를 찾아낼 수 있기에 그러하다.
가령 인종차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터무니없는 것인지는 역사를 읽어야 알 수 있다. 신과 과학의 이름으로 인종을 차별하고 학살까지 했지만, 실상은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향한 탐욕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그래서 꼭 그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음을 알아내는 길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고무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고 콩고인의 팔목을 하루에 무려 1308개씩이나 잘라낸 것이, 40년간 2000만명에 달하던 콩고 인구를 1000만명으로까지 줄어들게 한 것이 도대체 인류문명의 발전에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이었던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목도하며 역사 읽기와 공부의 중요성을 새삼 체감한다. 사회·경제적 소외와 상실의 아픔을 비아냥과 조롱의 행위로 달랜다며 광주항쟁 희생자들을 모욕한 것이 왜 민주공화국의 안녕을 해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는 것을 볼 때 그러하다. 또 나치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그리하면 왜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심지어 제재를 당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볼 때 그러하다. 역사를 읽고 공부해야 단순한 불만의 표출이라 해도, 또 노이즈마케팅이라 해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음을 구분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도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헤아리는 사리분별의 능력을 갖출 수 있다.
나치를 연상시키는 한 신인 걸그룹의 의상 (출처 : 경향DB)
지난주 세계한국학대회 참석차 하와이에 다녀왔다. 중간에 명소 몇 군데를 찾아가 보았다. 인상적이었던 곳은 진주만이었다. 역사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전쟁이라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탓하며 적으로 돌리는 언명보다는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물음을 던지며 ‘역사에 대한 기억과 이해,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방식이었다. 사리분별에 어두워 역사를 이념 다툼의 장으로 보며, 어느 한편의 소멸을 주창하는 이들이 접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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