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팀 보로비치 박사는 뭘 알고 왔다는 듯 점쟁이처럼 해안 어디를 짚습니다. 보트는 천천히 해안으로 다가가 바닥에 자갈이 닿을 때쯤 엔진을 멈춥니다. 네모반듯한 부두는 없습니다. 정강이가 절반쯤 잠기는 바닷물에 장화 신은 발을 담그고 해안으로 걸어 오릅니다. 섬에는 과연 뭐가 있을까요.
보로비치 박사의 짐작이 들어맞았습니다. 섬에는 젠투펭귄이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박사는 그 수를 헤아립니다. 75개. 박사의 눈빛이 반짝입니다. 예상과 얼추 들어맞는 모양입니다.
그린피스와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 공동 탐사대는 지난 1월 안데르손섬에서 전에 없던 젠투펭귄 둥지 75곳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젠투펭귄은 얼음을 싫어하고 온화한 기후를 선호하는 까닭에 아르헨티나 근처 포클랜드제도나 남대서양 사우스조지아섬 같은 남극대륙 바깥에 주로 서식합니다. 그런 펭귄이 남으로 둥지를 옮긴 건 이 섬이 퍽 온화해졌다는 방증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입니다.
사실 연구진은 이미 인공위성으로 이 섬에 젠투펭귄이 이주해 둥지를 튼 걸 관찰했습니다. 그렇지만 인공위성은 참고일 뿐입니다. 직접 가서 확인하기 전까지는 ‘추정, 예측, 가설’에 불과합니다. 눈으로 보고 나서야 사실로 받아들여 보고서를 씁니다. 연구자의 엄격하고 성실한 태도가 돋보입니다. 박사는 펭귄 몇몇이 서식지를 옮겼다는 조사 결과를 진지하고 엄중하게 해석합니다. 그간 가벼이 들었던 과학자들의 기후변화 연구 결과가 이렇게 양보 없이 만들어진 것이라니, 오늘 발견한 젠투펭귄 이주 사실이 준엄하게 다가옵니다.
보로비치 박사는 앞선 다른 탐사에서 남극 코끼리섬의 턱끈펭귄 개체 수가 50년 전보다 77%나 줄어든 걸 확인했답니다. 박사는 또 황제펭귄 2만5000쌍이 서식하는, 남극에서 두 번째로 큰 군락지에서 새끼 펭귄이 거의 모두 사라졌다는 영국 연구진의 조사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2016년 엘니뇨 현상으로 남극 일대 해류 흐름이 바뀐 영향이라 짐작한답니다.
보로비치 박사는 농반진반으로 이 상황을 젠투피케이션(Gentoof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상권이 살아나 임대료가 오르면서 원래 살던 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 ‘젠트리피케이션’에 펭귄 이름 ‘젠투’를 붙인 겁니다. 환경이 변하면 떠밀리듯 살던 곳을 등져야 하는 건 사람이든 펭귄이든 피차일반인 모양입니다. 기후변화의 씁쓸한 장면입니다.
여기 남극에서는 기후변화로 펭귄 대이동이 진행 중입니다. 멀리 펭귄뿐인가요. 가까이 우리나라에서는 발 없는 농작물이 북상하고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사과가 나고, 열대과일 파파야가 경남에서, 지중해 올리브가 전남에서 경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눈으로 보고도 기후변화를 읽어내지 못합니다. 작은 사실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는 보로비치 박사의 연구 감수성이 우리에게 필요한 때입니다.
김연식 그린피스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