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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거의 군것질을 하지 않지만 유난히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 일화가 즐겁다. 얼마 전 아이스크림과 브로콜리를 비유로 들며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밝힌 글이 있었다. 곧 출간되는 미국의 심리학자 스타노비치의 책 <우리를 분열시키는 편견>을 소개한 기사였다.

우리가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을 방해하는 인지 편향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친혁신 편향(pro-innovation bias)’은 ‘혁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혁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고, 반대로 그 단점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어떤 결정을 그것이 이루어진 원인보다는 결과에 비추어 평가하는 것은 ‘결과 편향(outcome bias)’이라고 한다.

스타노비치는 미국이 심각한 당파적 분열을 겪는 것은 인지 편향의 한 종류인 ‘내편 편향(myside bias)’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내편 편향’은 지능이나 열린 사고 그리고 교육 수준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다른 인지 편향과 매우 다르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다른 편향들은 그것이 오류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여줄 수 있지만, ‘내편 편향’에 빠진 사람에게 그것이 오류임을 보여주는 것은 놀랄 만큼 어렵다.

우리가 무언가를 믿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 ‘내편 편향’은 새로운 근거가 기존의 믿음과 일치할 때에는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에 어긋날 때에는 덜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존의 믿음이 실제적인 지식일 경우에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 믿음이 어떤 가치관이나 당파적 신념과 결부된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스타노비치는 인지적 능력과 ‘내편 편향’이 무관하기 때문에 지적 엘리트들조차 이 편향에 빠지며, 지적 자신감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편향을 보인다고 밝힌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쉬운 인지적 사고를 아이스크림에, 꼭 필요하지만 힘이 드는 인지적 사고를 브로콜리에 비유하면서, 브로콜리와 같은 인지적 사고를 함양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내편 편향’은 ‘소셜미디어 이용자가 그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필터링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인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간 적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신념을 공유하면서 별 문제를 못 느끼고 살아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며 추종자들로 하여금 모든 문제를 권력관계로 보게 만드는 ‘정체성 정치’와 맞물리면, 너무 당연한 진실에 대해서조차 공동체가 합의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매일같이 눈으로 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그와 같다.

나는 마르셀 뒤샹의 이 말을 좋아한다. “나는 나 자신의 취향에 따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반박해왔다.”

어떤 정신은 제 영혼의 지문과 같은 ‘취향’조차 반박하면서 자기를 쇄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단한 검증과 반박으로 담금질해야 할 ‘의견’조차 제 새끼처럼 아끼며 동종교배만을 반복한다. 그것이 개인의 삶에 머문다면, 걱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치료하겠다고 나설 일은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문제는 그것이 공동체 전체로 하여금 자명한 진실도 외면하게 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할 수 있는 영역을 점점 침식한다는 것이다. 지적 엘리트조차 피하기 힘든 ‘내편 편향’이 ‘필터 버블’을 거치고, ‘정체성 정치’를 통해 재생산된 결과가 지금 우리가 당혹스럽게 마주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자화상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개인들은 각자 달콤한 아이스크림만이 아닌 브로콜리도 먹기 위해 힘겹게 노력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경청하며, 괴로워도 반대편에 빙의해 느껴보려고 애써야 한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면 어느 날 문득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협회에 후원금을 송금하는 제 손을 보게 될 것이다.

‘필터 버블’의 해악에 대해서는 철저히 연구하고 조사해, 필요하면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빗나간 ‘정체성 정치’가 어떻게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며 공적인 의사소통을 교란시키는지 직시하고, 그에 대한 백신을 파국이 오기 전에 개발해야 한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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