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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영화 <기생충>이 한국인을 행복하게 할 줄은 몰랐다. 오스카 시상식을 우리의 행사처럼 즐겼다. 감독과 제작진의 영예를 한국과 연관 짓는 것은 낡은 감정 같지만, 실제로도 좁게는 한국영화계, 넓게는 한국의 성과인 측면이 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만, 본질적으로 종합예술이다. <기생충>의 성취는 감독의 각별한 재능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으나, 감독의 예술적 역할이 더 중요한 유럽 영화제 수상과 오스카 수상에는 차이가 있다. 오스카 수상이 더 뛰어난 업적인 것은 아니나, 더 어려운 장벽을 넘어선 건 분명하다. 봉준호,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감독 등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 왔는데, 그것은 대체로 개인의 역량이 발휘된 결과다. 그러나 오스카 수상에 이르면, 한국영화계와 한국이라는 배경을 더 살펴야 한다. 

영화잡지 스크린의 아시아 편집자는 며칠 전 ‘다음번 외국어 오스카 수상자는 어디에서 나올까’라는 기사를 작성했다. 그는 아시아 영화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국의 오스카 수상은 우연이 아니라고 썼다. 그리고 다음 외국어 오스카 수상자는 유럽에서 나오거나, 할리우드와 자국 사이에서 편안히 작업할 수 있는 남미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하며, 한국영화가 또 수상하지 않는 한 아시아는 아닐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어느 일본 평론가도 일본영화의 현실을 아쉬워하며 한국영화를 부러워하는 글을 썼다. 영화나 영화산업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부질없을 수 있지만, 한국영화는 이제 미국영화에 이어 가장 강력한 영화가 되었다. <기생충>의 이례적인 성과는 이런 토양에서 가능했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월드컵에서 일회적으로 우승한 게 아니라, FIFA 랭킹에서 꾸준히 최상위에 랭크되다가 올 것이 온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창의성에 더하여, ‘표현의 자유’의 쟁취, 영화진흥위원회를 필두로 하는 공적인 지원체계, 산업 자체의 전문화와 고도화, 부산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영화제의 기여, 높은 식견의 관객이 어우러진 결과다. 작다고만 할 수 없는 자국 시장의 크기와 세계 유수의 경제력이 기본체력이 된 것은 당연하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중국은 자본, 이야기의 전통, 자국 시장의 크기로 보아 매우 유리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은 경제력과 문화적 자본이 두둑하나, 제작 시스템이 낙후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주춤하고 있다. 역동성이 떨어진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는 경제력, 자국 시장의 협소함, 문화적 이질성 또는 지체 등으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영화라는 매우 미묘하고 복합적인 그리고 정신적이고도 산업적인 산물의 경우에, 그 탁월함은 개인의 성취인 동시에, 영화계의 성취이며, 그 나라의 성숙과 분리될 수 없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양극화, 정치권에서 표류 중인 수직계열화 문제를 비롯한 불공정거래, 아직 개선 중인 스태프 처우, 패턴화된 장르영화의 양산 등은 한국영화계의 숙제다. 이 문제마저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지구촌에서 한국영화의 위상과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이미 여러 긍정적 조짐이 있고, <기생충>이 그 변곡점이다. 개인적으로는 향후 20년 안에 한국영화가 아시아 어느 곳의 극장에서든 늘 상영되는 날이 도래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외부적 환경은 어떨까. 그 사회의 깊은 철학, 인간성에 대한 다층적 이해 없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불가능하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민주주의 그리고 공공기관의 중립성과 효율성이 쇠퇴하면, 영화 생태계는 이내 망가질 수 있다. 정치적 혼란을 겪는 홍콩이 예전에 누린 영화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세계적 배우가 갑자기 증발하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중국에서 걸출한 영화가 등장할 수 있을까. 그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쓰레기장으로 변한 공론장’ 그리고 ‘무기력한 국가’는 큰 걱정이다. 세계 영화인이 사랑하는 부산영화제는 공적 탄압으로 순식간에 휘청거렸다. 영화만을 위해 민주주의와 생산적인 의사소통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런데 한마디로 말해, 정치가 위태롭다. 정치의 역기능이 한국영화가 직면한 가장 큰 불확실성이고, 이 공동체를 옥죄는 가장 큰 위협이다.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인가.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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