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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권이 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 등 ‘사자방’ 비리로 약 100조원의 혈세를 날렸음이 확인되었다. 30조원의 혈세가 들어간 4대강에는 지금도 해마다 5000억원의 유지비, 3200억원의 이자가 나가고 있다. 40조원이 들어간 자원외교는 ‘깡통’이었다. 수십배 부풀린 값을 주고 저급 무기를 사들이는 비리는 구조화·고질화되었다. 박근혜 정권은 어디서 이를 벌충하여 재정위기를 타개하고 복지수요를 충족시키려는가.

새누리당 정권하에서 계속된 부자감세·친기업 정책 때문에 기업들의 사내유보율이 약 20%대이고 금액으로는 약 760조원이지만,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창출에 소극적이다. 국내 10대 그룹 82개 상장사(금융사 제외)의 경우 사내유보율은 약 1700%대이며, 금액은 약 500조원에 달한다. 반면 근로자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0.2%로 추락했다. 근로자들의 구매력이 사실상 없어졌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권은 부자증세는 없다고 한다. 지지층의 이반이 두려운 것이다. 토마 피케티가 주창하고 있는 누진적 부유세 부과나 빌 게이츠가 강조하는 상속세 강화 중 어느 것도 채택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정부는 작년 2월 소득세법 시행령을 고쳐 건설근로자의 퇴직공제금에 과세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작년 5만4967명으로부터 소득세 11억5400만원이 원천징수되었다. 건설업 특성상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건설근로자에게 거의 유일한 노후보장인 퇴직공제금도 털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주민세, 재산세, 자동차세 인상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어갔다. 근래 준조세인 교통범칙금 건수와 액수도 폭증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여신·수신·외환을 제외한 금융서비스에도 부가가치세가 부과된다. 야금야금 서민증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진행된 서민증세. 그 돈은 어디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조직적·제도적 “벼룩의 간 빼먹기”를 통해 확보한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박근혜 정권의 ‘임기 중 예산 계획’에 대통령 대표공약이었던 누리과정(만 3~5세 공통교육과정), 초등 돌봄 교실, 고교 무상교육을 위한 재정이 0원으로 설정된 걸 보니, 여기로 가지는 않는다. 박근혜 후보는 “반값 등록금을 꼭 실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공약은 폐기되었다. 무상급식은 진보파 지자체장과 교육감들의 공약이었지 박 후보의 대선 공약이 아니었기에 지키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내년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예산은 올해 3배 규모인 403억원이 편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돈의 행방을 알겠다. 작년 한 해 동안 정부는 각종 보조금, 공공조달, 비과세 감면 등 예산 지출액 21조원, 대출과 보증 등 정책금융 지원액을 합쳐 126조원 이상을 대기업에 보태주었으니, 또 다른 종착지도 알겠다.

최근 김종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소득 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강조하며 용기 있게 밝힌 사실이 있다. 그는 연간 2300여만원의 연금소득과 집을 포함, 5억원이 넘는 재산이 있지만 피부양자 자격 상한선에 미달하기에 퇴임 후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반면 서울 송파구 반지하 셋방에서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매달 5만140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했다. 5만140원은 부자에게는 한 끼 밥값이겠지만, 빈자에게는 목숨값이다. ‘송파 세 모녀’ 같은 극빈층으로부터 꼬박꼬박 뽑아낸 돈은 김 이사장같이 충분한 자력이 있는 사람들의 공짜 진료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요컨대 박근혜 정권은 ‘증세 없는 복지’ 운운하나 실상은 ‘복지 없는 서민증세’이다. 외관상 복지 시늉은 내야 하니, 서민층에게 앞에서 하나 주고는 뒤에서 두 개를 뺏고 있다. 현재 재정 상황에서 부자증세 없이는 ‘보편적 복지’는 물론 ‘선택적 복지’도 불가능함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집권세력이 노골적으로 친부자·친기업 정책을 밀어붙이는 사회에서 임금생활자로 산다는 것, 힘든 일이다. 직장을 잃는다는 것, 무간(無間)지옥에 떨어지는 격이다. 돈 없는 노인이 된다는 것, 고독사(孤獨死)의 초입에 들어선 것이다. 근래 출간된 책 제목으로 말하자면, “격차사회”의 바닥에 놓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승자독식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은 “절벽사회”의 벼랑에 서게 된다. ‘승자’를 더 챙기고 ‘격차’를 더 벌리고 ‘절벽’을 더 가파르게 하는 정권을 보며 국가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세금은 누가 얼마나 왜 내야 하는가 등 원론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조국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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