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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무관심 속에 치러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선거에서 유력 차기 대권후보 문재인은 신승(辛勝)하였으나 당내 최고지위는 물론 대중노출 측면에서도 유리한 지위를 확보했고, 호남 맹주 박지원은 문재인 견제세력을 총집결시키면서 세를 과시했으며, 1980년대 반독재학생운동의 지도자 이인영은 고투(苦鬪)하며 존재감을 유지했다. 그러나 과열되기 마련인 선거과정의 공방은 각 후보 및 지지자 사이에 깊은 감정의 골을 남겼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지적했던, 당을 분열시키고 지도부를 무력화하는 ‘악마’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선거결과는 이 정당이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의 정신을 따르는 정당임을 재확인해주었고, 각 세력의 지분은 대략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었다. 이제 세 후보 및 맹렬 지지자들은 세 분 고인이 자신들에게 무슨 요청을 하고 있을 것인지 생각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현 상황이 어떠한가. “이명박근혜” 보수정권의 민낯과 밑천이 다 드러났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가 계속 하락하여 “문제 있는 수준”이 되는 등 정치적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판은 불허하고 소통은 거부하는 ‘남조선 최고 존엄’이 되었다. 집권세력은 대한민국을 “이승만과 박정희만의 나라”로 만들면서, 반대자를 억압하거나 무력화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할 의사가 없고, 경제활성화는 할 능력이 없다. 뽑아 올리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기득권 유지와 확장에 충실했던 사람들이다. 내세우는 정책은 하나같이 서민과 중산층의 주머니를 털어 ‘사회귀족’을 챙겨주는 정책이다. 그 결과 국민의 절대다수는 ‘을’ 또는 ‘장그래’가 되어 불안과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율은 새정치연합 지지율을 계속 10~20%가량 앞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지만,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한 셈이다. 그사이 새누리당은 ‘탈박’에 시동 걸고 있다. 박근혜 정권 실정의 반사이익으로 정권이 야당에 넘어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작 발언은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필자는 2016년과 2017년 권력교체를 희망한다. 야당이 집권을 한다 해도 ‘천국’이 오진 않겠지만, ‘지옥’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에. 여기서 제1야당의 대표가 된 문재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민주화, 그리고 소득, 일자리, 복지를 중시하는 성장이라는 노선의 얼개는 잡힌 것 같다. 이제 본인이 공언한 정당 혁신을 실현해야 한다. 투명하고 계량 가능한 공천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확정하여 적대적 계파 대결과 불승복의 악순환을 원천봉쇄해야 한다. 영국 노동당의 경험에 따라, 시민참여를 보장하고 고무시키는 체제를 만들어 당의 기반을 확대·강화해야 한다. 사실 이는 현대 정당이 갖추어야 할 기본의 문제이다. 새누리당이 먼저 실천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정당 혁신 없이 총선 승리는 없다. 총선 승리 없으면 문재인은 없다. 그러면 문재인은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가. ‘육참골단(肉斬骨斷)’이다.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어야 상대의 뼈를 끊을 수 있다.” 만약 문 대표가 ‘살’을 챙기다가는 자신도 죽고, 당도 죽고, 범진보도 죽을 것이다. 그 결과 수구기득권의 ‘뼈’가 끊어지기는커녕 더 튼튼해질 것이다.

문재인 자신이 ‘친노’ 해체에 나서야 한다. ‘노무현 정신’에 충실한 ‘친노’라면 당의 혁신과 정권 교체를 위한 거름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낮추며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문재인을 앞에 내세우고 그 뒤에서 과실(果實)을 따려는 마음을 죽여야 한다. ‘친노’로 분류되지 않는 지도자와 그 지지 세력을 존중하고, 그 마음을 읽어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애초부터 중도진보와 중도보수의 연합정당 아니던가.

‘친노’건, ‘반노’건, ‘비노’건 모두 불쏘시개를 자처하고 자신을 태울 때 희망과 신뢰가 만들어질 것이다. 노선과 정책 논쟁은 필요하지만, 폐쇄적 계파 의식·문화와 분열의 프레임은 사라져야 한다. 누구도 진리를 독점하고 있지 않다. 확보하고 있는 진리의 양과 질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버려야 얻는다. 비워야 채워진다. 잘라내야 자라난다. 나눠야 커진다.

※이제 ‘밥과 법’을 마무리합니다. 올해 ‘긴 호흡’을 유지하며 써야 할 법학서가 있기에 대중매체에 글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밥’을 먹는 세상, 제대로 ‘법’이 서는 세상을 위한 노력은 미력이나마 계속할 것입니다. 그간 졸고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조국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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