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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사고 원인이 제대로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국회의 의지와 성실성이 가장 관건이지만, 이 사건의 면면이 워낙 두껍고 깊은 뿌리이기 때문이다. 헛된 희망일지라도 유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이 글에서 ‘구조적 문제’는 “선장이 비정규직이었다, 과적했다” 등 돈만 좇는 신자유주의라든가 만연한 도덕 불감증, 해경과 안전행정부의 관료주의와 무책임, ‘해수부 마피아’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일부 진보 진영의 상투적 진단, “국가안보보다 시민안전이 문제다”라는 논의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위에 적은 사항들은 ‘세월호’뿐 아니라 모든 사고와 민생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관련 첫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이동 중인 이준석 선장 (출처 : 경향DB)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의 원인은 “부정의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특정 캐릭터(인성)의 범람”이라고 생각한다. 원인 규명을 넘어 이 사건은 독일사회의 홀로코스트 논쟁처럼 우리의 일상적 의제가 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이 모색되어야 한다.
‘세월호’는 안전사고지만 안전 이슈라고 보는 것은 안이한 시각이다. 안전은 사건화 과정의 명명일 뿐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이중의 피해를 가져온다. 사건 초기 수학여행 전면 금지가 좋은 예다. 민방위 훈련 강화 논란은 더욱 기가 막히다.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국가안전 보장 그리고 이를 정권안보의 도구로 삼는 것. 한국현대사를 옥죄어 온 지배 관행이다. 거듭 말하지만, 세월호를 안전 문제로 보는 것은 국민에게 유리하지 않다. 세월호는 통치(governance)의 결과다.
최근 우리사회의 독특한 문화 현상인 ‘의리’는 믿을 만한 사람이 나(만)를 지켜준다는 기존 안전 개념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의리에 환호하고 있다. 의리 이미지가 뚜렷한 남자 배우에게 CF 제안이 수십건씩 쏟아지고 있다. 인물 창조가 직업인 배우에게 의리가 이미지냐, 진정성이냐는 논란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의리의 유행이 세월호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의리는 조직폭력배, 군인, 경찰, 남자의 우정 등 남성들 사이의 관계에서 주로 사용되어 왔다. 부정적으로는 켕기는 일을 얼버무릴 때 “우리가 남이가?”식의 집성촌(集姓村)적 배타성, 패거리 문화를 의미한다. 영화평론가 최보은은 의리의 조건으로 ‘떡고물’을 제시한 적이 있다. 의리는 뭔가 나눠 먹을 것이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의리고 뭐고 없고 보복이 횡행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의리와 정의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정의감이라는 말은 있지만 ‘의리감’은 없다. 의리는 보편적 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는 양심의 소리지만 의리는 힘센 자의 기호를 따른다. 정의는 모든 이에게 적용될 것을 전제하고 추구하는 일반 규범, 도리다. 정의(正義)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고뇌에서 시작되지만 의리는 ‘정(情)’에서 출발했다가 길을 잃는 심리 구조다.
“우리가 남이가” 이런 말을 다반사로 하는 이들조차 자신을 정의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리는 강자의 힘이 낭만화된 언어다. 있는 자들의 카르텔, 이것이 의리다. 더 많이 가지려는 집단들이 힘을 합쳐 약자의 밥상을 걷어차는 폭력의 담합, 즉 강자의 의리는 약자의 정의를 짓밟기 위한 것이다.
공동선 차원에서 약자의 이해와 안전을 보호하는 것, 인류가 전 역사를 통해 기다려온 선하고 강한 리더가 지금 어떤 남자 배우에게 투사되고 있는 의리다. 의리가 당대 한국사회에 맞게 번역된 것이다. 사람들이 세월호 선장에게 기대한 것은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이지 정의도 의리도 아니다.
지금처럼 리더에게 의리를 갈구하는 것은 황당할 뿐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의리는 본래 선별적으로 작동한다. ‘하나회’, 학벌, 지역주의가 그것이다. 퇴행적 현상이지만 역설적으로 세월호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 직업상 업무 수행을 의리라고 부르는 사회가 정상일까.
정의에는 냉소를 보이는 반면 의리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엉뚱한 의리를 낳았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왜 범람했겠는가. 정의는 논쟁적이지만 의리는 사적인 인연이기 때문에 조건만 맞는다면 무조건적인 안도감을 준다. 그러므로 평소 의리를 다져놔야 한다. 있는 자들에게 존경을 표하고(뇌물과 눈웃음), 일상적으로는 인맥 관리라고 불리는 사회생활. 나는 이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이 ‘세월호’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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