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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0대가 위태롭다. 20대는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다. 전체 확진자의 29%나 된다(질병관리본부, 확진환자 7755명 분석 결과). 인구 대비 20대 비율이 13%인 점을 감안하면 감염률은 다른 연령대보다 2배 이상 높다. 감염병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로는 청년들의 활동적이고 개방적인 태도가 꼽힌다. 감염되지 않은 20대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대학생은 캠퍼스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졸업생은 채용 인원 감축, 시험 연기 등으로 취업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운 좋게 취업했다 하더라도 인턴, 계약직 등 비정규직인 경우가 적지 않다. 

20대는 우리사회의 전형적인 프리케리아트(precariat: 위태로운 노동자층)다. 감염병에 취약하고 사회 면역력은 더더욱 없다. 대학진학률이 70%인 현실에서 20대는 대부분 학생이거나 취업준비생, 아니면 비정규직 노동자다. 불황이 계속되면서 청년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주거는 불안정하다.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는 계속 늘고 있다. 결혼을 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출생자가 사망자를 밑도는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됐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20대를 비롯한 청년들이 사회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위계문화 때문일 수 있고, 일부의 주장처럼 586세대(60년도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50대)가 세대의 이익을 독점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젊은 정치세력 부재가 청년을 더욱 불평등 세대로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청년을 배제시켰다. 청년은 기성세대의 들러리였거나 잉여에 불과했다. 역대 청년 국회의원 수가 증명한다. 20대 총선만 봐도 20~30대 의원은 고작 1%(3명)였다. 피선거권을 가진 25~39세는 인구의 약 27%다. 인구 비례대로라면 이 연령대에서 81명의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 세계 각국 의회에서 20~30대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3%에 달한다. 북유럽 3국은 20대 의원 비율만 10%를 넘는다. 핀란드에서는 지난해 말 34세 여성정치인이 총리로 선출됐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될 때의 나이는 39세였다. 

최근 정치권이 청년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젊은이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데다 세대 간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인식에서 나온 움직임이다. 지난해 국회는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췄다. 청년의 권익 옹호를 명문화한 청년기본법도 제정했다. 21대 4·15 총선을 앞두고는 여야 각 정당이 청년일자리 확대, 주거 개선 등 공약을 쏟아냈다. 세대교체를 강조하며 청년 인재를 영입하겠다고도 했다. 결과는 속 빈 강정이었다. 18세에 투표권을 부여했지만, 정작 학교 선거교육을 불허하면서 의회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다. 청년 인재 영입은 보여주기식 선거전략으로 드러났다. 4·15 총선 등록 결과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정의당 등 주요 3당의 20~30대 지역구 후보는 28명으로 4.7%에 그쳤다. 3당 비례대표 후보자 115명 가운데 당선 안정권에 배치된 청년 후보는 10명도 안된다. 반면 50~60대 지역구 후보는 4년 전보다 늘었다. 청년층의 21대 국회 진입장벽은 더 높아졌다.  

현실정치에서 기성세대는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운다. 그들은 다음 세대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오늘날 젊은세대는 부모보다 못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사회학자 이철승 교수가 <불평등의 세대>에서 지적한 대로 기성 정치세대는 계속 자신들이 구축한 ‘정치·경제적 이익 네트워크’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며 청년들을 배제할 것이다. 물론 청년 몇 사람이 국회에 진출한다고 해서 상황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기득권 세대가 주도하는 거대 양당체제에서 청년 의원 몇 사람의 목소리가 반영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층의 자유로운 국회 진출을 위해 청년 공천할당제 도입, 선거기탁금제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선거법 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정치잉여로 남을 수는 없다. 청년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번 4·15 총선에 참여하는 청년 유권자는 어느 때보다 많다. 새로 투표권을 부여받은 만 18세(53만명)를 포함하면 10~30대는 1500만명을 헤아린다. 과대 대표된 거대 양당을 심판하고 청년을 대표할 새로운 정치세력을 찾아야 한다. 가장 불평등한 세대이지만, 청년에게는 평등한 한 표가 있다. 그 한 표가 암울한 세계에 맞설 무기다.

<조운찬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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