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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실 조금 겁이 난다. 10년 전에 금강산관광을 다녀왔고, 또 얼마 전 대학 강단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강연한 적이 있는데, 혹시 종북주의자로 몰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김일성이 한번인가 언급했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이 이 용어를 쓴 것은 바로 종북 정당이 된다는 가설이 성립하는 사회라는 점 때문에 더욱 놀랍다. 하여튼 ‘종북’이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종북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종북과 친북의 차이는 무엇인지, 종북 숙주와 종북 좌파는 같은 뜻인지, 종북몰이는 왜 그렇게 자주하는지, 도통 그놈의 ‘종북’ 때문에 정신이 헷갈린다.

종북,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을 쫓아간다’ ‘북한을 추종한다’이다. 종북의 사전적 정의는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과 북한 정권의 노선을 따르는 것을 말할 것이다. 좀 더 보완한다면 종북은 남한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이다. 그래서 종북주의자로 몰리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있다. 이미 국민소득에서 남한에 30배 이하로 뒤떨어져 있는 사회, 김일성주의를 종교화한 사회, 유니세프 보고서에서도 인간개발 하위국에 올라있는 국가, 그러한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사회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전쟁 위협과 공포정치, 그리고 핵개발로 버티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정치엘리트들을 믿고 따르는 세력이 한국에 정말 있는지, 정확히 알아보았으면 한다.

물론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주체사상에 경도되었거나,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노선을 베끼기에 급급했던 운동가들이 있었겠지만, 현재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설 수 있는 자리는 이미 없다. 그만큼 남북간의 경제적, 사회적 차이가 뒤집을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사회가 개방된다면, 북한 정권 담당자들은 종북이 아니라 종남(從南)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 국민들이 서독과 합치는 것을 찬성한 것은 바로 서독의 현저한 경제력 우위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연일 ‘종북’은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달아오르는가. 우리는 1945년부터 한반도를 갈라놓았던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이념논쟁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북한에는 좌익정권이 들어서고, 남한은 보수 우익정권이 차지하면서, 남북은 미국과 소련을 대리한 체제 경쟁에 돌입했고, 각자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하에서의 냉전반공주의는 권력의 생존논리였다. 반공주의에 도전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들은 바로 반체제 인사로 간주되었다.

197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남한이 앞서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은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북한변수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그 기득권을 공고히하는 데 적절히 활용되었으며,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규탄' 집회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동안 잠잠했다가 때 아니게 냉전반공주의 유물로 다시 등장한 종북, 박정희 정권의 유산을 물려받은 박근혜 정부에 와서 그 기승을 부리고 있다, 종북 완장을 차고 모두 엎드리라고 호령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종북이 아닙니다. 결백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종북을 막는 확실한 방법은 민주주의를 신장시켜, 이제는 경제력뿐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임을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북한에 보여주는 길이 아닐까 한다.


유용화 |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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