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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간, 음악평론가로서 글쓰기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토크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최근엔 정말 많은 음악인들이 토크가 연계된 콘서트를 진행하고, 미술인들 역시 전시장에서 수많은 전시 연계 토크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런 자리에서 나는 주로 사회자 또는 음악평론가로 참여해 질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작업을 선보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등 그간 창작자에게 궁금했던 것을 공론장에서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이 토크의 현장은 일종의 비평 ‘현장실습’과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경험상 이런 자리는 ‘대화 그 자체’를 위해 마련되었다. 어떤 특정 해답을 도출하려는 의도 없이 일단 유연하고 풍성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이다. 좋은 대화가 가장 중요한 이 자리에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고, 그에 맞는 적절한, 때로는 비판적인 시선을 지닌 질문을 던질 것이 요구되었다. 말과 글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겠으나 나는 예술가들과 이런 토크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와 혼자 평론을 쓸 때의 태도에 그리 큰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양쪽 모두에서 나는 음악 혹은 음악가의 말을 듣고 ‘질문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평론이 질문하는 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거시적 차원에서 음악계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촉구한다. 혹자는 현장의 계보를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이제까지의 일들을 솎아내 무엇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를 정리해 소개하기도 한다. 모두가 무심했던 곳 어딘가에 숨어있던 문제적 상황을 예리한 눈으로 포착해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필자도 있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평론가의 위치는 저 높은 곳에서 현장을 관망하며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을 수도, 모두가 떠난 자리를 주의 깊게 되돌아보는 시점에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치 토크의 현장에서 예술가와 대화를 나눌 때처럼,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차를 공유하며 지금의 일에 대해 질문하는 일이다. 내가 음악을 듣고 떠오른 생각을 굳이 글로 정리해 내보내는 이유는 나의 ‘질문’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니 늘 자문자답을 하거나 의문으로 글을 끝맺게 되어 답답한 마음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유연한 태도로 대화의 가능성을 잠재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러한 입장을 지향하고 있다. 좋은 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청하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이것이 평론이 갖추어야 할 동일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비평문은 근본적으로 그것이 글인 만큼 어떤 의견을 정리해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건넬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이 모든 일이 ‘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상정하고, 대화자 없이도 좋은 대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평론가라는 말을 가끔 ‘질문자’ 혹은 ‘대화자’라는 말로 바꾸어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평론가라는 직업에 부여된 과업이 ‘평가하여 논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창작자들에게 ‘좋은 질문을 건네는 일’로 탈바꿈하는 것 같다.

평론가라는 직함에는 어딘가 날선 느낌이 있다. 물론 평론가는 자신의 위치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무디지 않은 시선으로 엄중히 고민하며 글을 써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라면 평론가는 실제로 날카로워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벼려진 칼끝이 더 자주 겨냥해야 하는 것은 음악보다는 평론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타인의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론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그 글이 어떤 영향력을 가질지 재고해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입장에서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다듬어나가고 싶은 것은 바로 나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게 만드는 반성의 시선, 그리고 평가자가 아닌 ‘대화자’의 자리에서 음악과 음악가들에게 질문하는 태도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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