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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성장을 위한 새 돌파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중국의 정보기술(IT) 대표주자인 화웨이, 샤오미 등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중국의 IT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한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각은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중국제 수입품 등을 통한 피상적인 정보에 기반을 두다보니 중국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번 방문에서 느낀 점은 중국을 단순히 저가 제품 공급처라고 생각하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이다. 샤오미를 예로 들면 기존의 업체가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운영한다. 샤오미는 광고를 아예 하지 않고, 매장 없이 인터넷으로만 제품을 판매한다.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중요한 원가절감 요인이 된다. 여기에 낮은 임금을 더하면 한국 스마트폰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생산이 가능할 것이다. 샤오미는 신제품 개발에도 특별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샤오미에는 신제품 테스트를 위한 자원봉사단 성격의 팬클럽이 있어서 개발한 제품을 이들에게 제공하면 열성적으로 모든 면을 검사·분석해 문제점을 잡아내고, 앞으로의 개발방향까지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열성 팬클럽 덕택에 샤오미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업데이트된다고 한다.

샤오미는 창업 5년 만에 기업가치 100억달러에 도달했다. 물론 샤오미는 중국 내수시장이 크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신생 기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데는 대략 5년이면 충분한 것 같다. 이 문제와 관련해 최근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됐던 ‘갑을관계’가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갑을’의 대표적인 경우로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관계를 보면 한국에서 갑은 어느 정도 법적 보호막을 갖추고 있다. 부당한 거래로 손해를 입은 을이 소송을 하더라도 막강한 법조 인력을 갖춘 갑에게 상대가 되기 어려우며, 사법부에서 우호적인 판결을 받은 전례도 별로 없다. 하청업체의 제조원가 분석 및 신기술 탈취, 불규칙한 발주물량 조절 등이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이다. 문제는 을 중에 신기술·신개념의 신생 기업이 많으며,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잠재력이 있는데도 한국의 ‘갑을관계’ 풍토 때문에 제대로 성장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기업의 국제적인 진출이 많아지면서 상황이 좀 달라지고 있다. 한국에서 갑의 지위를 누리던 기업들이 외국 법정의 대형 소송에서 패하는 경우도 있었고, 외국 정부로부터 대규모 벌금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한국 법정에서는 관대하게 넘어가던 지적재산권 침해가 외국에서는 엄청난 배상을 해야 하는 등 한국 법정의 판례와 다른 것이 많이 있다. 이 결과들은 결국 갑에게 우호적인 한국의 법률 체계가 국제 기준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오른쪽)이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의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 본사를 방문해 레이쥔 최고경영자(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연구·개발의 효율성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국에서 신규 업종이 생겨나는 과정은 정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신규 사업을 시작할 때 정부의 지원을 얻으려 노력하고, 사업이 정착되면 참여 기업들은 협회를 구성해 정부와 지원책, 규제 방향 등을 논의하게 된다. 신규 사업이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업계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은 막강하게 유지되며, 그 분야에 신설되는 규제 중에는 공무원의 노후보장성인 것도 많이 들어간다.

이제 산업의 고도화로 인해 정부 주도형 신규 업종 양성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명됐다. 운영에 문제가 많다는 것도 드러났다. 기존 참여 업체는 후발 참여자를 봉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특수한 전문 기술, 국가 안보 등이 관련되면 그것을 핑계로 아예 문을 닫고, 소수의 참여자만으로 운영하다가 여러 가지 사고를 일으켰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래창조과학부가 이동통신요금 인가제를 철폐하고 시장경제에 맡기겠다고 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의 경제발전 역사를 보면 고비마다 중대한 정책 전환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통신을 주력산업으로 하겠다고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은 회의적이었다. 미국도 실용화가 안된 첨단 기술이 한국에 바로 적용되겠느냐고 의심했다. 하지만 정보통신은 성공했고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도 크게 향상됐다. 이제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중열 | 아주대 IT융합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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