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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한 달 동안 ‘요우커’로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난리였다. 서울 사대문 안의 거리는 셀카봉을 든 젊은 남녀와 뒤엉킨 중국인 관광객들로 주말마다 북새통을 이뤘고, 언론은 기회가 날 때마다 2020년의 “요우커 천만 시대”를 점치며 내수 시장에 화색이 돌기를 기원했다.
두 달 전 필자는 이 칼럼에서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세가 서울의 문화적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가설을 제기한 바 있다(9월15일자 29면). 그러면 시류에 발맞춰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인 통계와 지표를 통해 명동과 홍대 앞 상권의 변화상을 살펴보면 어떨까?
먼저 명동 상권부터 들여다보자. 이곳에 큰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당시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불쏘시개로 삼아 부동산 호황의 불꽃놀이를 벌인 것과 마찬가지로, 명동 상권 역시 상업용 빌딩의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도약대로 그와 유사한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둘 사이는 큰 차이도 있었다. 강남의 아파트가 ‘중산층’ 내 상위 소득자의 요새로 변모한 반면, 명동의 상업용 빌딩은 해외 SPA 브랜드의 간판을 건물 전면에 내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물들은 본래 두산타워나 밀리오레 정도를 꿈꾸며 세워졌지만, 당시 빠른 속도로 매출을 늘려가던 인터넷 의류 쇼핑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 건물들이 매출 하향세에서 벗어나 임대업자들의 아우성을 잠재우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해외 SPA 브랜드의 입점을 추진하는 것뿐이었다. 2007년 리모델링을 마친 후 유니클로가 입점한 명동의류 건물은 첫 성공 사례였다.
21세기 명동을 강타한 퍼스트 임팩트가 “명동 거리가 일본과 너무 비슷해서 마음이 편하다”는 일본인 관광객의 인터뷰 기사가 언론에 등장할 무렵 대충 마무리되었다면, 세컨드 임팩트는 바로 그 뒤를 이어 2009년부터 시작됐다. 그 주인공은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200만명대 초반을 유지하던 일본인 관광객의 수는 2009년에 300만명의 문턱을 넘어선 이후부터 주춤하는 모양새였다. 반면 2009년 134만명이던 중국인 관광객의 수는 2013년 392만명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한국을 찾은 요우커들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면세점이 붐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런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지표 두 가지는 화장품 판매점의 증가와 매장 임대료의 상승이었다. 2008년만 해도 명동의 화장품 판매점은 21곳에 불과했으나, 2012년 81곳, 2014년 105곳으로 급증했다. 또한 상업용 건물의 매장 임대료도 껑충 뛰어올랐다. 2009년 ㎡당 19만원대이던 1층 매장의 평균 임대료는 2012년에는 28만원대에 도달했다. 이와 더불어 오랜 세월 명동의 기나긴 보행로를 차지했던 젊은이들은 중국인 관광객과의 자리다툼에서 밀려났다. ‘88만원 세대’의 구매력은 공시지가 최고 지역의 임대료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의 행적을 완벽하게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일부를 추측해볼 수 있는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젊은층이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의 주요 역 하차 인원이 그것이다. 이 시기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지하철역은 홍대입구역이었다. 이 역의 하차 인원은 2005년, 2009년에 각각 1700만명대, 1900만명대였다. 이런 증가세는 2010년을 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졌다. 2010년 2128만명, 2013년 2501만명으로, 4년 동안 무려 600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홍대 앞 상권은 유동인구의 증가와 맞물려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지만, 그 반대급부로 본래의 특색을 잃은 채 건물주와 자영업자 간의 임대 분쟁 다발 지역으로 변모했다.
이제 마무리해보자. 중국인 관광객 증가세와 서울 주요 상권 변화 간의 연관관계를 인정한다면, 명동과 홍대 앞, 두 상권의 최근 변모는 “요우커 천만 시대” 서울의 미래를 예고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차원의 대책 없이 관광객 증가의 경제적 효과에만 열을 올리는 한, 서울 곳곳은 중국인 관광객의 눈높이와 건물주의 이해관계에 떠밀려 하향 평준화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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