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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생물학적이면서도 개인적이고 또한 사회적인 것이다. 생물학적 소인과 개인적 경험, 사회적 구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질병 발생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매우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현재 진행형으로 진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갑작스러운 불안이나 우울, 분노 조절 문제로 찾아올 때 그 배경에는 상당 기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사회구조적 문제, 특히 불안정한 노동 환경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통스러운 감정 이면에는, 좋은 일자리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현실과 생존을 위해 분투하며 감내해야 했던 모욕의 순간들이 중첩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질병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게 아니다. 대개는 아픈 줄도 모르고 병을 키워가는 과정이 있다.

진료실에서 만나본 청년들의 꿈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자리면 족했다. 빚이 없거나 적은 상태, 어설프게나마 삶을 기댈 수 있을 정도의 직장, 그 위에서 단출하게나마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수준의 안정성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하는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월급을 여러 달 미루다 떼어먹는 고용주가 있는가 하면, 성희롱을 하는 상사도 있었다. 왕따를 일삼는 선배들을 상대해야 하는가 하면, 노예처럼 부려먹다 정직원이 되기 직전 해고하는 회사를 마주해야 할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청년들이 그런 경험들을 반복하는 가운데 결국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탓이 아닐수록 자신을 탓했다. 그렇게 진료실을 찾아오는 청년들의 마음은 거의 비참한 지경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청년들을 더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공감이 결여된 어른들의 태도였다. 청년들을 위로한다며 내놓는 그들의 말과 처방이 오히려 청년들을 더 좌절하고 분노케 했다. 다음은 그 중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2014년 12월 당시 여당 대표는 한 타운홀미팅에서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부당한 처우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고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알바를 구하러 가서 그런 사람인가 아닌가 구분하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며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설득해 마음을 바꾸는 것도 여러분 능력”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한 김대표가 물을 마시고 있다. _경향DB

이런 식의 대화는 약간씩 형태를 달리하며 끊임없이 변주된다. 청년들이 잘못된 구조와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어디에나 제약조건이 있고 관행과 절차가 있다” “개인이 알아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은 노력과 태도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의 문제를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버리는 것이다.

어른들의 이런 뻔한 훈수에 젊은이들은 귀를 막고 입을 닫는다. 대화가 단절되는 전형적인 코스가 이렇다.

청년들은 이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노력의 배신을 경험한다.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개인은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계를 넘어서는 더 큰 노력을 기울이다 자신을 소진하거나, 노력을 포기하고 대열에서 이탈해 배제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사이에 수많은 회색지대가 있겠지만,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사실상 선택지는 그리 넓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조언해야 할 것은 더 이상 ‘노력’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이해, 기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지원, 노력과 보상이 상응하는 시스템이다.

아버지 세대도 힘들었고 선배 세대도 힘들었지만, 지금의 청년들 역시 그에 못지않게 힘든 시절을 살아내고 있다.

어쩌면 조금씩 한 구석이 허물어지고 있거나, 어딘가에서 알약을 삼키며 겨우 존재를 보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고 청년들을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선의 노력은 지향할 수 있을 뿐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리하지 않고 적정한 노력을 기울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최선은 아니어도 최적인 것, 어쩌면 그게 진짜 최선인지도 모른다.

어느 청년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힘든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어른으로서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직장 구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니. 힘들지만 참아야지” 같은 말을 듣자고 그런 얘길 꺼낸 건 아닐 것이다.

섣부른 조언을 하려거든 차라리 입을 닫는 게 낫다. 우선 필요한 건 “그런 상황을 겪고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무척 힘들었겠다.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 같은 공감의 말일 것이다.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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