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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태아 낙태 붐 세대’의 남녀성비 불균형과 남성들의 불안이 화제다. 초음파 검진이 본격화된 1980년대 후반 이후 10년간, ‘여성으로 감별된 태아’에 대한 인공임신중절 시술은 연평균 3만건에 달했다. 흥미롭다.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가 제거의 원인이 되는 시대를 지나왔는데, 불안한 건 남성이란다. 두 가지 사실을 기술하는 하나의 문장 안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변별되느냐는 그 사회의 권력구조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직접적인 ‘살해 위협’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은 불안하다. 남녀 임금격차와 여성 노동의 성격이 보여주듯이 여성은 경제적으로 더 열악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정의당 ‘중식이밴드’ 사건이 상징적으로 드러내듯이 정치적 시민권 역시 쉽게 부정당한다. 동시에 여성혐오 문화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여성들의 불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자. 여성 불안은 현재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고 있는 두 개의 대중문화 아이콘에서 정확하게 확인된다. 하나는 ‘가모장’ 김숙이고, 다른 하나는 ‘문명남’ 에릭남이다.

김숙은 <최고의 사랑>(JTBC)에 쇼윈도 부부로 캐스팅되면서 전설의 가부장 미러링, 즉 가모장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김숙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한다. “어디 남자가 건방지게.” “여자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야 그게 행복이지.” 그가 한국의 가부장을 미러링할 때마다 여성들은 ‘물개박수’로 환호한다. 그러면서 김숙은 ‘갓숙’ ‘퓨리오숙’과 같은 별명을 얻었다. 이 별명들은 한국 여성들이 불안 속에서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퓨리오숙이란 별명이 패러디하고 있는 것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퓨리오사다. 퓨리오사는 핵전쟁 이후 황폐해진 세계에서 출산기계이자 독재자 가부장의 소유물로 전락한 여성들을 구출하고 반란을 꿈꾼다. 결국 독재자를 처단하고 여성영웅이 되는데, 그의 손에는 세계를 구원할 한 줌의 씨앗이 들려 있다. 이는 군사주의와 결탁한 가부장제적 자본주의가 망친 세계를 자연과의 공존 및 자급자족의 삶으로 구원하려는 에코 페미니즘의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갓숙(god+김숙)’이라는 한국적 가부장제하에서 탄생한 가모장 캐릭터가 합쳐진 것이 퓨리오숙이다. 그렇다면 퓨리오숙이야말로 보편적 가부장제와 한국의 특수성이 결합된 한국적 가부장제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전사에 대한 별명이 된다.

이와 함께 ‘문명남’인 에릭남이 급부상하고 있다. 서서히 높아져 가고 있던 에릭남의 인기는 <SNL 코리아>(tvN) 시즌7 ‘에릭남 편’ 방송 후 폭발했다. 에릭남은 스스로 망가지는 연기는 마다하지 않되 ‘간디’와 같은 위인과 ‘홍석천’과 같은 성소수자는 희화화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누리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욱 비하의 대상으로 삼는 최근 한국 코미디의 어떤 경향과는 꽤 비교되는 태도다. 한 누리꾼은 “여자에게 친절하기 때문이 아니다, 문명인이기 때문에 에릭남을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가모장과 문명남에 대한 열광은 일면 이성애에 기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녀 관계’ 안에서 등장하는 것이라고 반드시 이성애적인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여기에는 이성애를 초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남성과 공존해야 하는 한국 여성의 생존 문제다. 2015년 한 언론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한 것처럼 온라인에서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혐오가 아니라 공포였다. 기사는 남성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대한 공포, 시선에 대한 공포, 그리고 결혼생활에 대한 공포가 여성들을 불안하게 한다고 밝힌다.

이를 과민반응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다. 예컨대 ‘맥심 코리아’ 사건을 떠올려보자. ‘맥심 코리아’는 2015년 9월호 표지에 한 남성이 여성을 납치, 살해한 뒤 트렁크에 넣어놓은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이게 진짜 나쁜 남자다, 좋아 죽겠지?”라고 설명했다. 이후 성범죄를 미화하고 상품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를 일부 여성들의 과민반응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결국 공식 사과하고 잡지를 전량 폐기하게 된다. 미국 본사가 한국 여성들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서구는 한국 여성에게 선진적인 성체계를 가진 ‘문명국’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한국은 전근대적인 성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헬)조선’이 된다. 문명남 캐릭터에 대한 열광은 이 선진성에 대한 기대와도 연결되어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9초마다 한 명씩 여성이 폭행을 당하고, 매일 세 명의 여자가 파트너 혹은 전 파트너에게 살해당한다. 그러므로 ‘문명’이란,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들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이것이 과연 여성들의 ‘오버’인가? 폭력을 양산하는 재현을 그만두라는 것, 그것을 지적했을 때 성찰하고 사과하라는 것, 부당한 차별과 혐오를 거두라는 것, 폭력을 휘두르지 말라는 것. 아니 그 무엇보다 ‘죽이지 말라는 것’이 그렇게 과도한 요구인가? 어째서 남성의 불안만 주목받고 여성의 공포는 폄하당하는가. 가모장과 문명남 캐릭터의 성공으로부터 얻는 교훈이 있기를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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