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5월이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스며든 봄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뽐내는 때다. 연둣빛 새싹이 포근한 봄볕을 받아 건강한 초록 잎이 되고, 잡초와 덤불로만 생각했던 곳에 장미, 철쭉과 같은 꽃들이 피어나 제 이름과 향기를 알리고 있다. 어린잎이 성장하고 꽃이 피어나는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법(法)이라는 한자는 ‘물(水)’과 ‘가다(去)’라는 한자가 모여 만들어졌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곧 법이라는 옛 선인의 지혜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이상하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3일 임시국회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의결될 예정이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로 부르든, ‘검찰 정상화’라고 부르든 이번 법률안 처리과정에서 국회가 보여준 모습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내용을 떠나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이 합의하고 발표한 내용이 바로 다음날 뒤집혔다. 국민의힘 책임이 크다. 민주당의 탈법도 보기 민망했다. 법사위에서는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탈당해 하루아침에 무소속으로 당적을 바꾸었다.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무소속 위원의 찬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국회 회기를 당일 끝내는 ‘회기 쪼개기’에 무력화되었다. 공청회도 건너뛰었다. 18대 국회에서 당시 과반의석을 차지했던 한나라당의 입법독주를 민주당이 육탄전으로 막아내며 ‘동물국회’라는 비난을 받아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의 주요 절차가 2022년 민주당의 손으로 무력화된 것은 비극이다.

절차가 이상하니 내용도 이상해졌다. 수사와 기소가 서로 다른 기관에 분리되고, 검찰의 직접수사를 폐지하는 원칙에 동의한다. 그러나 형사사법체계는 범죄자에 대한 수사뿐만 아니라 범죄피해자의 보호와 권리보장, 신속하고 공백 없는 완결적 절차 마련도 중요하다. 과거 검찰이 유죄결론에 꿰맞춰 무리하게 수사하고, 제 식구 감싸는 데 권한을 남용했던 것은 심각한 잘못이지만, 이를 바로잡는 데는 힘의 논리가 아닌 구체적인 로드맵과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세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형사사법절차는 국민이 이용하는 공공재이며, 서민들은 제도의 벽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일률적으로 폐지하고, 수사가 불필요하게 지연·종결될 위험성을 가진 지금 개정안에 동의하기 어렵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인정하는 대신 수사관 등 직접수사 인력 감축의 구체적 로드맵을 만들고, 국가수사 총량원칙에 따라 경찰 수사역량에 대한 보강과 권한통제가 입법 이전에 필요하다. 자기방어가 취약한 피해자의 사법체계에서 보호방안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는 검찰개혁 벼락치기에 몰입할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문화재청에서 어린이날 무료입장 행사 안내에 ‘외국인 어린이 제외’라고 발표해 문제가 되었다. 장애인단체는 장애인도 죽을 걱정 없이 지하철을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온몸을 던져 외치고 있다. 국회 앞 텐트 농성장에는 두 명의 활동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20일 넘게 곡기를 끊고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사회에 넘쳐나는 차별을 멈추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길, 그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법의 길이자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정상적인 역할이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일반 칼럼 >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이 쪼개지면 일어나는 일  (0) 2022.06.07
아침 햇살처럼 빛나는 애들아  (0) 2022.05.23
우물이 깊어질수록  (0) 2022.04.18
내년에도 감자 심을 수 있을까  (0) 2022.03.28
혼밥은 죄가 없다  (0) 2022.03.21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