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시선

우물이 깊어질수록

opinionX 2022. 4. 18. 10:32

대학 강의를 할 때,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것들’이란 주제로 에세이 과제를 내곤 했다. ‘사회화’를 입체적으로 느껴보자는 의도였지만, 자기소개서에 익숙한 학생들은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버릇을 감추지 못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지내서” “1년 넘게 어학연수를 하면서” “몇 개월간 유럽 배낭여행을 해보았기에” 등을 언급한 후 밑도 끝도 없이 ‘그래서’ 세상 보는 눈이 넓어졌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증거는 한 줄도 없었다.

나는 이들과 학기마다 불평등에 대해서 토론했고 이를 응축한 것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이다. 제목처럼, 노력이 부족한 결과를 차별하는 건 당연하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시대를 짚었다. 견문이 넓어졌다는 아무개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하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산다는 걸 느꼈다는 이가 “경쟁력 없는 자는 도태되어도 마땅하지!”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좋다는 경험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간단한 질문만으로도 불평등의 본질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겠지만, 특별한 경험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집단에 이런 의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위에 ‘누구나’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비슷한 지역과 학교에서 성장했고 같은 사교육을 받으며 동일한 삶의 궤적을 거쳤으니 말이다. 생애가 우물에 갇힌 꼴인데, 이 공간에서의 성장은 우물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땅을 더 깊게 파는 형태다. 그 대학, 그 직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가장 유리하다는 길만을 파야 하고,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의 급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하기에 더 외부와 단절된다.

이 과정을 거쳐야 전문직이 되는 건 자명하다. 문제는 자기 분야만 붙들고 사는 전문가란 존재할 수 없다는 거다. 자신의 우물 밖으로 자신의 식견을 사람들이 이해하게끔 전달하지 않으면 사회가 전문가를 우대할 이유가 없다. 그때마다 헛발질이 등장한다. 왜 대중이 전문가처럼 생각하지 못하는지는 고민 없이 사람들을 우매하다, 어리석다, 한심하다로 손쉽게 규정하는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전문성을 갖추는 과정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편견을 줄이는 기회를 개인에게 제공하자는 거다. 이는 해외 경험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배경이 다른 이들과 만나서 부딪치고 타협하면서 상대를 대하는 조심성을 길러야지만 가능하다. 그러면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느끼기에 견문을 넓혔다는 표현이 얼마나 건방진 것인지도 알게 된다. 지금은 반대다. 자신의 분야에서 똑똑해질수록,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생애를 단호하게 평가한다.

지역, 성별, 연령, 출신학교 등을 고려한 선발은 효율성보다 그 배경이 무게감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새 정부는 내각 인선에서 불거진 ‘치우쳤다’는 논란에 능력대로만 뽑았다는 말만 반복한다. ‘능력대로’의 문제점을 고려하는 정치 철학이 빈약하니, 영어가 유창한데 문제 될 거 없다는 괴상한 상관성이 등장한다. 한 우물만을 판 전문가들이니 걱정 말라는데, 이러다가 서울 강남구 출신의 능력 있는 공무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 불평등 정책을 만들지 않겠는가.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시선]최신 글 더 보기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