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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중국 전문가


사마천은 지준이라는 고매한 인품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인생의 바른 길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고의 가치 기준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立德)이요, 그 다음은 책을 써서 자기주장을 세우는 입언(立言)이며, 그 다음은 공업을 세우는 입공(立功)입니다”라고 했다. 이것이 사마천의 이른바 ‘삼립’이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셋 중에 하나라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사회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며 나름대로 업적을 쌓게 되면 입신 내지 입공했다 할 것이며, 어느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자기주장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면 입언했다 할 것이다. 사마천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을 최고의 가치기준으로 보면서 자신은 감히 이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없고, 그저 입언할 수 있다면 뜻한 바를 이룬 것이라며 자신을 낮추었다. 그러나 그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치른 대가를 생각하노라면 그의 입언은 입덕의 경지를 뛰어넘고도 남는다.

그런데 사마천이 말하는 입신(공)이든, 입언이든 그 결과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기준은 자신과 남을 기만하지 않는 도덕의 수립과 강화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안되면 입공한 자는 권세와 돈으로 세상을 해치고, 입언한 자는 글과 말로 혹세무민하여 사회를 부도덕하고 부정한 쪽으로 이끌게 된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논문표절 실태 조사 결과 ㅣ 출처:경향DB

사마천은 입덕은 언감생심이니 입언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물이 <사기>라는 절대 역사서이다. 하지만 입언도 입공도 입덕으로 가는 과정임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입공과 입언은 선택이지만 입덕은 필수라는 것이다. 그래야 입공도 입언도 세상에 유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언의 중요한 과정 내지 그 결과라 할 수 있는 학위논문을 표절로 도배를 하고도 당당한 자들을 보노라면 ‘덕’이 실종된 입신출세가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하게 된다. 입언은 자기주장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을 표절한다는 것은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는 절도행위의 단계를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과 영혼을 파는 행위다. 이런 사람들은 못할 짓이 없다.

“지식 없는 열정은 무모하며, 열정 없는 지식은 무의미하다. 과장된 지식은 허망하며, 거짓된 지식은 사악하다. 그리고 분별없는 지식은 위험하다.”

지금 우리 지식사회와 지식인들은 총체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병폐가 벌써 골수에까지 사무쳐 도저히 손쓸 수가 없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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