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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시청역 1번 출구를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정동교회를 지난다. 그 길 끝에 경향신문이 있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바닥을 수놓는 아름다운 출근길이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숙연함이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혼란스러웠던 구한말의 역사와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길에는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 있고, 아관파천의 무대였던 구 러시아공사관이 있고, 을사늑약을 맺은 중명전이 있다. 또 유관순 열사 동상이 교정을 지키는 이화여고가 있다.

얼마 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하얀 천이 쳐졌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고종황제의 국장을 재연한 것이라고 했다. 고작 100년 전만 해도 이 땅에 왕이 있었고, 주권 잃은 왕의 타살 의혹에 민중들은 분노했다. 이 땅은 일제 치하였고 우리글과 우리말을 맘껏 쓰지 못했다. 언제 광복이 될지, 아니 광복이 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1919년 그날 태극기 하나 들고 맨몸으로 거리에 뛰쳐나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단한 용기다.

3·1 운동 100주년을 앞둔 지난달 24일 덕수궁을 흰 천으로 둘러싸 고종 장례를 재현하는 <백년 만의 국장> 전시 준비가 한창이다. 이석우 기자

어쩌면 올 3·1절은 한반도의 축제가 될 뻔했다. 앞선 2월27~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긴 진통 끝에 성사된 만남이었기에 무언가 나올 것 같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은 경제적으로 큰 잠재력을 가진 나라”라는 덕담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넬 때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합의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따리가 부족했을 수도, 김 위원장의 요구가 과했을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담대한 성과를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실망스러운 결과다.

반면 북·미 회담에 부정적이던 사람들은 “나쁜 결과보다는 결렬이 낫다”며 빈손 결과를 환영하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100년 전에도 ‘그런다고 광복이 될 줄 아느냐’며 독립운동에 냉소적인 사람들은 있었다. 심지어는 일제에 붙어 부역을 한 조선인 순사도 있었다. 미래는 단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역사는 언제나 절실한 자들의 몫이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하는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생각보다 난제가 많아 큰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렇더라도 실망하지는 마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다시 만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또 한발 전진한 것”이라고 했다. 나라 밖에서 보는 한반도 정세는 냉정했다.

북·미 정상이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진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트위터에 올렸다는 시 한 편이 올라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던 2015년 10월28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에 2 대 15로 대패하고 올린 안도현 시인의 시다.

‘그날은 절대로 쉽게 오지 않는다/ 그날은 깨지고 박살 나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참고 기다리면서 엉덩이가 짓물러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그날을 고대하는 마음과 마음들이 뒤섞이고 걸러지고/ 나눠지고 침전되고 정리된 이후에 온다’

3·1운동 이후 광복까지도 26년이 걸렸다. 한두 번의 훈풍으로 70년간 굳어진 고드름이 단번에 녹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일지 모른다. 고약한 꽃샘추위에 조금 녹다가 다시 얼고, 다시 얼었다 또 녹으면서 고드름은 봄을 맞는다. 개성공단도, 금강산관광도, 남북 철도 연결도 그렇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니 덕수궁 돌담길 은행나무 끝에 움이 살짝 텄다. 제비 한 마리 온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제비가 와야 봄이 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지배배 웃으며 헤어졌다. 봄은 올 것이다.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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