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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투신한 한 젊은 엄마의 안타까운 뉴스가 흘러나왔다. 옆에서 같이 TV를 보던 한 어르신은 “미친X” 하고 대뜸 욕부터 하셨다. 산모가 왜 우울증에 시달렸는지에 대한 상세 배경이 생략된 빈약한 뉴스 탓도 있겠지만 기존 세대들은 갓난아기를 둔 여성들의 산후우울증을 대개는 “정신이 나약해서 생기는 문제”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어릴 적 모성애는 출산하면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예쁜 아기가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불안감이 앞섰다. 과연 저 자그마한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특히 아기에 대한 사랑스러운 감정과는 별개로 아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정 내 역학구도에서 아이가 절대적 우위일 때의 상황들은 당혹스러웠다. 아이가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라는 것과는 별개로 사회는 때때로 아이를 위한 전방위적인 희생을 엄마가 원하지 않을 때,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엄마에게 요구하곤 한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 속엔 기쁨과 만족감도 많지만 기혼의 직장맘이라면 으레 겪었을 뻔하고도 짠한 에피소드들이 나를 포함해 주변에 차고 넘친다.

요즘 여성들의 출산과 육아 기피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못된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05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올해는 1.0 미만으로 붕괴될 상황에 놓여 있다. 결혼 소식을 전한 한 지인도 ‘딩크’를 선언했다.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전지구적으로 여성들이 과거보다 아이들을 덜 낳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핵가족의 확산, 경제적 상황, 높아진 초혼 연령 등을 꼽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중요한 다른 이유가 빠진 듯하다. 바로 출산과 육아를 통해 여성들이 느끼는 삶의 효능감이 과거보다 못해졌다는 점이다.

농경시대 소위 자궁가족(uterine family) 시절에는 가진 것과 배운 것 없는 젊은 여성이 시집와서 할 수 있는 최대 능력치는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남편 집안에 더해 가면서 ‘어머니’로서 자신의 세력권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도 이런 맥락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 딸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귀한 대접을 받고 아들과 동등하게 경쟁한다. 학창 시절 또는 결혼 전 사회생활의 결과물들은 오히려 여성들이 남성들을 압도한다. 과거엔 결혼과 자녀양육을 통해서만 여성을 넘어 엄마라는 사회인으로 재평가받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도리어 ‘자녀 양육’에 대한 사전학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맞이하는 ‘알파걸들의 엄마되기’는 삶의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멘붕에 빠지기 일쑤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저출산대책들이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최근 헝가리 정부가 자국 여성들을 겨냥해 자녀 넷 이상 낳을 경우 평생 소득세 면제 등 7가지 정책을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정부만 해도 2006년부터 지금까지 저출산대책에 143조원이나 쏟아부었다.

19세기 여행가로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 여성회원이었던 이사벨라 버드, 대영제국의 토대를 닦았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등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독립 여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더라도 자의식 강한 요즘 여성들 역시 아이가 없어도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찾아 잘 살고들 있다. 나이 마흔 넘은 주변의 지인들을 보더라도 그들은 강사 내지 공무원으로, 큰 회사·작은 회사 직원 등으로 밥벌이하면서 일상의 소소함을 만끽하면서 지낸다. 지구상 가장 번식에 성공한 가축 동물과 아프리카 초원을 뛰어노는 멸종위기의 야생 동물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생각해보면 그네들의 심리가 영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비유가 생뚱맞지만 말이다.

<문주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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