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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생 청년 김정은은 53년생 문재인을 만났고 46년생 트럼프를 만났다. 83년생인 나보다 한 살이 어린 그는, 좋든 싫든 한반도 현대사의 중심에 놓였다. 내가 그라면 많이 두렵고 외롭고, 막막할 것 같다. 그래서 정상회담에 나선 그의 발걸음, 표정, 단어 선택 같은 것을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 지켜보았다. 젊은 그가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 젊은 사람 치고는 잘하네,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나선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기성세대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수를 놓으며 어떻게든 함께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분투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북한에 84년생 김정은씨가 있다면,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이름을 알린 80년대생 청년은 아마도 82년생 김지영씨겠다. 그는 실존 인물은 아니고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다. 연예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만큼 눈에 띄는 청년도 별로 없었다. 78년생인 작가가 친구나 선후배들,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고 후기를 남겼지만, 그 무수한 김지영씨와 그 친구들은 소설 바깥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경계에만 계속 머물러 있고 중심부로 나오지 못한다.

주로 보이는 것은 82 ‘학번’들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더욱, 80년대생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그 시기에 대학을 다닌 80년대 학번들만이 주류를 이룬다. 이른바 386세대들이다.

‘386’은 1990년대라는 특정 시기에 ‘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라는 조건을 그럭저럭 만족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기성세대의 동의어처럼 인식될 만큼 이 사회의 중추를 이룬다. 이번 2018년 지방선거에도 386을 비롯해 그 선배 세대들이 많이 출마했다.

반면 20·30대 출마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의 범위를 넓혀 만 39세 이하까지로 설정하더라도 9300여명 중 656명, 전체의 7%에 불과하다.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은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이들의 당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개는 몇 %의 지지를 받느냐에 관심이 맞추어져 있는 수준이다.

단순히 청년을 위해서만 청년정치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우리 사회를 진보시키고 혁신을 불러온 여러 발견들은 청년의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경험이나 관록 같은 미덕들도 중요하겠으나, 주변을 둘러보면 그것이 별로 좋은 방향으로 쌓이는 일도 없는 듯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는 식의 발화는 거의 틀림없이 좀 더 나은 제안들을 없던 일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지금의 386세대가 30대 젊은 날에 한국 사회를 변혁시켜왔듯 지금의 30대에게도 그러한 힘이 있다. 386이라는, 2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어느 특정 세대만을 지칭해 온 그 용어는 이제 그 권력과 함의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때가 되었다. 이른바, 포스트 386을 맞이할 때가 된 것이다. ‘30대·80년대 출생·60세가 된 부모를 둔’, 그런 청년들이 존재한다.

80년대에 태어난 이 386들은 이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막 벗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했고, 오전에는 반공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평화통일 포스터를 그릴 만큼 무언가 계속 좌우의 중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를 감각했다. 중·고등학생이던 90년대에는 전에 없던 무한경쟁의 시기를 거쳤고, 대학생이거나 사회인이 된 2000년대 이후에는 자기계발의 서사와 함께 찾아온 최악의 취업난을 맞이해야 했다. 2018년의 386들은 거기에서 살아남은, 당사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역량을 갖춘 세대다. 그에 더해, 이제 환갑이 되어 은퇴를 준비하는 그들의 부모들은 청년 이상의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자식-부모 간 부양의 역전을 걱정해야 할 만큼,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조력자이기도 하다. 포스트 386은 20세기의 386들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어느 시대에나 2030의 나이에 5060의 부모를 둔, 평범한 청년들이 있다. 386에서 의미를 갖는 숫자는 3과 6이다. 특정 세대에게 굳이 부여하지 않고도 계속해서 보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는 이 3N6과 2N5들을 조금 더 현실정치로 끌어내야 한다.

386을 비롯한 기존의 세대들이 이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은퇴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정은과 문재인이 손을 맞잡았듯, 그들이 정상회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동등한 눈높이로 만났듯, 길을 열어두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처럼 93 대 7이 아니라, 비슷한 숫자가 되어 만나야 한다. 여기에는 만 25세 이상에게만 주어지는 지방선거 피선거권 연령이나 200만~5000만원에 이르는 선거기탁금을 낮추는 방안이 함께 고민되어야 하겠다.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다. 그 시대의 가장 평범한 청년들이 주변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기 위해 고민하고 직접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들이 동등한 권력을 가지고 발화할 수 있을 때,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하고 정중하고 힘 있는 제안을 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386들의 분투를 기억하며, 건투를 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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