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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 청문회 취소되고 바로 검찰 조사 받는다면서?

- 어 그래. 나도 들었어. 의사가 증거를 공개했다지.

- 그런데 그거 공소시효가 지난 일 아니야?

- 아니래. 다른 일로 싸우다가 의사가 엿 먹이려고 확 불어버린 거래.

- 예전부터 소문이 돌더니 진짜였구나.

- 순진하긴, 당연히 진짜지. 아마 지금 떨고 있는 사람들 많을걸?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전자 맞춤 아기가 제한적이나마 허용되기 시작하고서 채 10년도 안 지났다. 선천적으로 특정 질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지녀 아이 갖기를 망설이던 부모들에게는 복음과 같은 조치였다. 집안 대대로 심장이 약하다, 간이 안 좋다 등의 얘기를 하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더 심한 유전병 때문에 아예 결혼조차 포기했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좋지 않은 유전자들을 미리 제거한 유전자 맞춤 아기로 2세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유전자 조작을 하는 과정에서 지능이나 신체 기능들이 남들보다 우수하도록 하는 편법이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정부에서는 절대 그럴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감독, 관리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매우 엄격한 절차와 인증 과정을 거치도록 해 놓았다. 그렇게 해서 시행된 유전자 맞춤 아기는 의료 복지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빠르게 제도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런데 유전자 맞춤 아기들이 취학 연령에 들어설 즈음부터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재벌이나 유력 정치인들 집안에서 태어난 몇몇 유전자 맞춤 아기들이 처음부터 ‘유전자 마사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애들은 원래 집안에 내려오던 선천적 유전 질환이 인정되어 유전자 맞춤 아기로 태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몰래 지능도 더 높고 근지구력이나 골격 등도 훨씬 뛰어난 유전자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전자 시술 과정은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의무였지만 사실 의사를 매수하거나 병원 차원에서 조작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결국 한 종합병원의 의사가 양심선언이라는 명분으로 유전자 맞춤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이면 거래가 있었다는 점을 폭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목된 당사자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지낸 유명 정치인이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단호하게 잡아뗐지만 의사의 증언이 워낙 구체적이라 결국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폭로했던 의사가 그 정치인과 다른 일로 법적 분쟁을 하는 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정치인에게 우호적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가 유전자 맞춤 시술과 관련된 비밀 의료 기록을 모두 공개하면서 일거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 우리 어쩌지? 그냥 아이를 낳으면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50%인데….

- 괜찮을 거야. 설마 이번 일로 유전자 맞춤 시술 그 자체를 다시 전면 금지시키기야 하겠어?

- 바로 두 달 뒤가 총선이라서 그래. 선거 때마다 다시 금지시키겠다는 공약이 계속 나왔잖아.

- 하긴 그 정당이 이번에 의석수가 많이 늘어날 거라고 하지. 정말 어떻게 될까 불안하네.

- 만약 다시 금지된다고 해도 법률안 통과되고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우리 그 전에 바로 아이를 갖자.

- 유전자 맞춤 아기 낳으려면 아직 저축을 더 해야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당신 말대로 서두르는 게 낫겠어.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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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밝히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된 지는 이미 15년이 지났다. 섬세한 유전자 편집을 가능하게 해 주는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CRISPR)가 이미 등장했으며, 작년에는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편집 시술이 시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류의 의료 복지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세기적 과학기술은 늘 세기적 윤리 문제와 쌍둥이로 태어난다. 이런 유전공학 기술들이 사회에 전면적으로 수용된다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유전적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어날 것도 틀림없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늘 우리에게 어려운 선택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윤리적 상상력은 계속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21세기는 무엇보다도 거대한 시행착오의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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