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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어요. 내가 곧 영생을 얻게 된다니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었죠. 한 치의 의심도 없었어요.”

1993년 이스라엘인들이 탄 버스를 탈취해 함께 폭사하려다 실패한 뒤 승객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대원이 자살 폭탄테러를 준비하던 기간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저지른 무슬림 형제들이나, 요르단 조종사를 산 채로 화형 시킨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스트들도 희생자가 죽는 모습을 보며 죄책감보다는 크나큰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끔찍하다. 최근에는 18세 한국인 김모군이 IS에 자발적으로 가담했다는 소식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며 테러리스트가 되고자 하는가? 무엇이 이들을 인간 폭탄으로 만드는가?

대중 매체나 일반적인 통념은 자살 테러리스트를 인간이길 포기한 악마나 맛이 간 미치광이로 그린다. 못 배우고 가난한 무직자들이 깊은 좌절감과 정신병에 시달린 끝에 자살 테러를 감행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9·11 테러범들을 ‘사악한 겁쟁이’라 부른 바 있다. 과연 그럴까?

인류학자 스콧 애트런은 중동의 수많은 자살 테러리스트들과 심층 면담을 했다. 그 결과, 세간의 흔한 통념은 완전히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 무지하거나, 가난하거나, 정신병이 있기는커녕 자살 테러리스트들은 비교적 교육을 잘 받은 중산층 가정 출신이었다. 정신 이상도 없었다. 테러단체에 들기 전에 폭력 전과가 이미 있었던 이도 거의 없었다. 대개 젊은 미혼 남자들이었고, 이슬람교에 대한 신앙심이 꽤 깊었다.

아니나다를까, IS에 가담한 김군도 공무원 아버지를 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사교성이 부족했을 뿐 온순한 성격이었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어느 모로 보나 정상 분포에 속하는 젊은 미혼 남성들이 중동의 테러 단체에 다투어 지원한다는 사실은 테러 조직의 한 간부가 내뱉은 푸념에서 알 수 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는 거요.”

왜 젊은 남성 중에서 테러 조직에 가담하는 자가 나오는가? 인류의 진화 역사에 그 해답이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기가 속한 동아리 내에서 인정을 받으려 애를 더 쓰는 쪽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아득한 조상 남성이 집단 내에서 차지한 지위는 그가 장차 얻게 될 자식 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들은 위신을 높일 수만 있다면 무모하고 위험한 짓에 과감히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친구와 누가 오줌을 더 멀리 싸는지 겨룬다. 길 가다가 눈이 마주쳤다며 칼부림을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각자의 연봉이나 지능을 놓고 허세를 부린다.


애트런은 테러의 씨앗이 젊은 남성들의 작은 동아리에서 종종 싹튼다고 지적한다. 카페, 기숙사, 이발소, 축구 클럽, 인터넷 게시판에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대의를 위해 온 몸을 던진다면 그는 삽시간에 주목받고 인정받게 된다. 대의를 위한 헌신은 특히 종교를 통해 강화된다. 말 그대로 천국을 믿어서라기보다는, 숭고한 사명에 내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는 영적인 경외감이 IS와 관련된 웹사이트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게 한다.

애트런은 미국 상원 분과위원회에 출석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코란이 아니라 친구들의 눈앞에서 찬사와 존경을 얻을 테니 어서 행동에 나서라는 짜릿한 대의입니다. 살아서는 결코 맛보지 못할 더 큰 세상에서 영원히 존경받고 기억되는 환희를 친구들을 통해 얻는 것입니다.”

요컨대, 여기 한 평범한 젊은 남자가 있다. 또래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열망이 종교를 만난다. 끔찍한 자살 테러가 신성한 사명으로 둔갑하게 된다.

김군이 IS에 가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중동의 극단적인 테러에 한국인이 연루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할 필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극소수의 가난한 정신병자들이 IS에 세뇌되어 인간 폭탄이 된다는 통념은 명백히 틀렸을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김군이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회원이라는 헛소문까지 한때 나돌지 않았던가.

상당한 수의 평범한 한국 젊은이들에게 TV에 나오는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왠지 ‘쿨’하고 멋있게 비추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먼저 아프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 눈에 비치는 ‘영웅’들이 자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재앙과 고통을 주고 있는지 더 상세히 알릴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해법으로, 또래들에게 인정받고자 하고 뭔가 가슴 뛰는 체험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만족하게 해줄 온라인 및 오프라인상의 연결망을 더 많이 만드는 데 정책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농구나 축구 동아리, 보이 스카우트는 사내 아이들 간의 무의미한 싸움박질을 줄이는 데 특효약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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