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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집 짓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독일 목수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일행 한 사람이 독일 목수의 하루 임금이 얼마인지 물었다. 우리가 만난 목수가 30년가량 목수일을 했다는데 꽤 잘사는 것처럼 보여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숙련된 기술을 가진 마이스터가 되기 전까지는 우리 돈으로 15만원쯤 받고, 마이스터가 되어야 25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이구동성으로 그것밖에 못 받느냐는 반응을 보이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납득이 잘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다시 세금이나 보험을 공제한 후의 임금이 얼마인지 물었다. 연금보험, 의료보험, 세금, 실업보험, 통일연대기금을 제하면 약 10만원 또는 15만원가량 된다고 한다.

독일 목수와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한국 목수에게 하루 10만원 받고 일할 수 있겠는지 물었다. 자기는 물론 아무도 하려 들지 않을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공제되는 5만원이 나중에 이런저런 혜택으로 되돌아온다고 해도 지금 주머니 속으로 10만원밖에 안 들어오는 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목수의 하루 임금은 15만원에서 25만원이다. 독일 목수와 같은 수준이다. 당장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돈만 따지면 40%가량 더 많다. 그런데도 한국 목수의 생활수준은 독일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역설적이지만 그 이유는 독일 목수는 세금이나 보험으로 내는 돈이 많고, 한국 목수는 그런 돈을 거의 내지 않는다는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30년 전 독일에서 조교로 일할 때 월급은 명목가치로 140만원가량 되었다. 그중에서 22만원이 세금, 15만원이 연금, 12만원이 의료보험, 4만원이 실업보험으로 공제되었으니,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90만원이 채 안되었다. 수입이 당시 독일 임금 생활자의 중간에 못 미쳤는데도 월급의 40%에 가까운 돈이 세금과 보험으로 나갔던 것이다. 그래도 큰 불만은 없었다. 그 덕에 그곳에서 대학 다니던 6년 동안 등록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실질가치로 따져서도 그때보다 수입이 두 배 이상 되지만 세금 등으로 공제되는 돈은 20%밖에 안된다.

우리가 만난 목수는 나이가 40대 중반이지만 자기 작업장을 가지고 있고, 번듯한 집에서 산다. 아이도 둘이나 있다.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여자아이는 우선 목수일을 배우려 한다. 대학에 진학할지는 일을 다 배우고 나서 결정한다고 한다. 목수가 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들인 돈은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데 들어간 것이 대부분이다. 수업료나 사교육비로 들어간 돈은 전혀 없었다. 아이가 목수일을 배운 후 대학에 간다고 해도 교육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두 월급의 40%를 공제당한 덕이다.

10년 전 남편을 사별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서울에 살고 있는 조모씨(71)가 4일 자신의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조씨는 “기초연금 20만원 준다고 해서 좋아했었는데 그만큼 기초생활급여를 깎아 정말 서운했다”고 말했다. (출처 : 경향DB)


지금 한국에서는 증세와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증세 없는 복지’ ‘보편복지’ ‘선별복지’ 같은 추상적인 말들과 무슨무슨 복지 관련 법안들로 가득 차 있다. 모두 피부에 와닿지 않는 구체성 없는 말이다. 그러니 복지가 과도하면 국민이 나태해져서 나라가 거덜날 수 있다는 국민 모욕적인 말도 튀어나오고,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말한 적이 있네 없네 하는 게 뉴스거리가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한국 목수에게 다시 의료비 걱정 없고, 아이들 대학 졸업 때까지 교육비 않고, 늙어서도 적지만 최저생계비 이상의 정기 수입이 생긴다면 하루 임금 10만원을 받아도 괜찮겠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게 정말 신뢰할 수 있는 거라면 받아들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지금 복지논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의 성찬이 아니다. 하루 10만원 버는 목수도 그런대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구체적인 방법이고, 그에게 5만원을 내면 훨씬 더 큰 혜택이 돌아온다는 것을 약속하고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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