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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음악 축제의 계절이다. 록이나 재즈만이 아니라 클래식과 국악에서도 그렇다.

지난 1일 서울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공원 곳곳에 놓인 피아노들에서 차례로 연주가 시작된다. 바이올린·첼로·더블베이스·플루트·오보에·기타는 물론이고 하프나 아코디언처럼 흔히 볼 수 없는 악기도 등장한다. 갖가지 악기가 빚어내는 소리에 지나가던 이들도 연주자들 주위로 모여든다.

주말 늦은 오후 공원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음악 소리. 30분쯤 지나자 24개 팀 전체가 펼치는 음악이 여기저기 울려 퍼지더니 한 팀씩 차례로 연주가 끝난다. 이 동시다발 클래식 버스킹 공연은 ‘원먼스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프롬나드 콘서트’. 말 그대로 공원을 산책하며 듣는 음악회다. 모여든 관객들은 야외공연장에서 이어진 오케스트라 연주에도 함께했다. 7월 한 달 내내 전 세계 30여개 나라에서 400개 이상의 공연이 열리는 ‘원먼스 페스티벌’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으로 라이브 생중계되며 이렇게 개막을 알렸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문화가 있는 삶’을 모토로 내건 이 페스티벌은 ‘하우스콘서트’(대표 박창수)가 3년 전부터 열고 있는 여름 음악 축제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에서 즐기는 음악문화를 정착시킨 ‘하우스콘서트’의 글로벌 버전으로 시작해 매년 새로운 콘셉트로 진화하고 있다.

작년에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도입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공연을 생생하게 전했고, 올해는 오픈 플랫폼을 마련해 누구나 다양한 콘텐츠로 직접 축제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칠레·인도·독일 등 세계 각지의 무대, 함안·순천·파주 등 국내 24개 스쿨 콘서트 현장, 대학 연습실과 출연자의 집, 문화원과 마을 도서관 등 장소를 가리지 않은 갖가지 문화 행사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라이브로 전해지고, 그 게시물은 원먼스 페스티벌의 홈페이지에 링크된다. 시간과 공간, 콘텐츠의 제약을 없애고 참여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들로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 이는 연대와 공감, 소통의 새로운 예술 향유 방식을 실험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여우락 페스티벌’은 대표적인 여름 음악 축제다. ‘여기 우리 음악(樂)이 있다’(여우락)는 이름처럼 ‘국악’을 기반으로 하되 지난 7년간 과감한 외연 확장을 꾀했다면, 올해는 원일(타악·피리 주자)을 예술감독으로 영입해 내적인 질적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개막공연 ‘장단 DNA - 김용배적 감각’은 사물놀이 창단 멤버였으나 1986년 요절한 전설적인 상쇠 고 김용배를 소환하며, 전통의 현재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 무대였다. 전자음향·풍물·굿이 어우러지는 색다른 구성, 설치미술가의 감각적인 무대디자인과 연출, 신명나는 에너지가 분출된 탁월한 연주로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독창성, 절심함, 새로움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선정되었다는 올해 여우락의 15개 참가팀의 면면을 보면 인디밴드들과 젊은 음악가들이 눈에 띄지만, 공연에서 더욱 돋보였던 점은 중견 국악인이나 원로 명인들이 젊은이들과 한 무대에서 음악을 만들어간 것이었다. 서로 다른 분야나 세대의 접속에서 생겨나는 긴장이야말로 각자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창조로 이어질 수 있음에 천착한 결과이리라.

올여름 이 두 음악 축제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예술적 고민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의 지원 사업이든, 예술가와 애호가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것이든,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각자의 위치에서 질문하며 실천해가고 있다고 보인다.

음악 축제의 성패는 이미 확립된 포맷이나 스타 연주자 혹은 지원금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들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세상의 이슈와 접목하여 적절한 주제와 서사로 엮어낼 때 예술적 공감은 생겨날 수 있다. 음악 축제 역시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며 자기진화를 거듭할 때 살아남게 되지 않을까.

이희경 음악학자·한예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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