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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맛있다는 건 무엇인가. 달고 짜고 시고 쓰고 맵고, 이 오미(五味)의 강약과 조화일 것이다. 지방의 고소함, 아미노산염의 감칠맛 역시 맛의 요소다. 그 외에도 담백한 맛, 진한 맛 등등…. 대부분이 공감하는 맛들이 있다. 공감대의 영역을 벗어났을 때 맛은 사라진다. 단어의 기의가 기표에 부합하지 않거나 혹은 과도하게 넘쳐났을 때, 우리는 맛없다는 말을 쓴다. 이걸로 충분한가. 물론 그럴 리가. 세상에는 맛있음과 맛없음의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맛이 존재한다. 그 맛은 취향을 탄다. 부합하는 자에게는 그 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침샘을 활성화시키고 부합하지 않는 자에게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다.

단어를 던진다. 홍어. 침이 고이는가? 아님 고개가 저어지는가? 나는 전자다. 한 개의 히읗, 두 개의 이응, ㅗ와 ㅓ. 총 다섯 개의 자음과 모음이 결합할 때 나는 아득해진다. 넓을 홍(洪)을 써서 홍어다. 살점의 색 때문에 붉을 홍(紅)을 쓸 거라 생각했는데 몸통이 가오리처럼 널찍하다 보니 그렇게 불렀나 보다. 어원은 아무래도 좋다. 난 그저 그 두 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으로 내뱉기도 전에 침이 용천수처럼 샘솟는다. 이제 글을 시작했는데 모든 걸 작파하고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 홍어의 맛을 뭐라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호불호가 강한 맛. 타협이란 없다.

몇 번인가, 홍어 미경험자들을 데리고 먹으러 간 적이 있다. 홍어는 단호한 음식이다. 체험의 시간, 표정의 변화가 그만큼 확실한 음식도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불행하다. 그 몇 번의 경험 중 나로 인해 홍어의 세계에 개화를 했다는 이를 만난 적이 없다. 늘,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하품이나 하는 알피니스트를 보는 셰르파의 기분을 느껴야 했다. 검증된 집도 그러할진대 나조차 가본 적 없는 곳을 홍어 초행자들과 함께한다는 건 모험이다. 홍어 연대의 제보자들을 믿을 수밖에. 국내산 삼합을 시켰다. 홍어를 닮았으며, 스스로를 홍어 연구소장으로 일컫는 사장님이 접시를 내왔다. 반찬은 단출했다. 콩나물과 미나리가 전부였다. 그리고 홍어와 삼겹살, 5년 된 묵은지의 등장. 때깔이, 때깔이 남달랐다. 넓을 홍(洪)자의 홍어가 아니라 붉을 홍(紅)자의 홍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빛이었다. 사장님의 인도에 따라 한 점을 소금에 살짝 찍어 50번을 씹었다. 향기롭게(반어법이 아니다) 삭힌 홍어에서 암모니아를 머금은 입자가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우흡, 기침 비슷한 것을 한 후 찌그러진 양은잔의 막걸리를 쫙 들이켰다. “이게 진짜 홍어 먹는 법이지라~.” 사장님은 말했다. 그 후 본격적으로 홍어를 탐했다. 묵은지와 수육에 삼합으로도 먹고, 홍어회만 먹기도 했다. 뿌듯했다.    

배를 어느 정도 채웠을 때 초행자들의 표정은 마치 시나이산에서 석판을 득템한 모세의 그것과 같았다. 홍어는커녕 아직 제대로 된 평양냉면도 못 먹어본 20대 초반 친구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한겨울 에베레스트 북벽으로 알피니스트를 정상에 올리고 만 셰르파의 기분이었다. 홍어계의 텐징 노르가이가 된 것이다. 이날의 피크는 홍어애였다. 어지간한 홍어애는 웬만한 푸아그라의 뺨을 때리고도 남는다. 이 집의 홍어애는, 웬만한 푸아그라의 뺨을 때리는 어지간한 홍어애의 뺨을 난타하고 말았다. 이런 홍어를 맛봤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친하지 않았던 우리는 기꺼이 친구라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릴 땐 홍어의 맛을 몰랐다. 주변에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자연히 접할 기회가 없었다. 혹여 그 전에 먹어봤나 기억을 짜봐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최소한 아무런 인상이 없었던 건 분명하다. 선플도 악플도 아닌 무플이었다니, 안타깝지 않은가. 결혼 예정인 여자 친구가 있다. 그녀와의 만남에 결정적인 진전의 계기를 마련해준 게 홍어다. 어릴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보다 가열차게 홍어를 먹고 다녔을 것이다. 훗날의 나를 위하여. 남들은 달달하고 ‘샤방샤방한’ 음식을 먹으며 사랑을 싹틔운다는데 고작 홍어라니,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튼.

김작가 |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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