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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혁신의 선구자 찰스 랜드리는 10월 초 서울의 한 포럼에서 이렇게 발표를 마무리했다.

“기술은 비약적 발전을 이뤄왔다. 그러나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조직과 관리의 형태는 대체로 수백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것이 바로 시민의 참여가 위축된 이유다. 시민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고 규정과 장려책을 보완해 공무원들이 최선을 다하게 함으로써 시민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여기엔 새로운 형식의 행정이 요구된다.”

객석에서 물었다. “새로운 형식의 행정”이 뭐냐고. 그는 “창의적 관료제”라고 말했다. 재차 질문이 나왔다. 그게 뭐냐고. 그는 답했다. “안됩니다. 왜냐하면~”이 아니라 “해봅시다. 그러자면~”이라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운동 시절에 이런 탄식을 한 바 있다. ‘새로운 것을 해보자 하면 공무원은 안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규정에 없고, 예산이 없고, 사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무원은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라는 규정이 없어서다. 취지를 살피면 기존 예산으로 할 수도 있지만 딱 그 이름으로 된 예산이 없어서다. 모든 사례엔 첫 시도가 있기 마련이지만 최초의 사례라는 위험 부담을 안기 싫어서다.

누구나 그렇듯 요청을 회피하고자 들면 “수백년간 제자리걸음”의 반복을 선택한다. 이렇게 되면 민선 지방자치가 25년에 이른다 한들 “대의민주주의, 조직과 관리”는 관선 시절의 형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 “해봅시다. 그러자면~”이라고 응답하는 “창의적 관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거두절미하고 그에게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어떤 리더십일까. 리더십 컨설턴트 리처드 레이더는 이렇게 요약했다. “있어야 할 곳에서,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가 리더십이다. “~느낀다(I feel)”는 현재진행형 동사가 리더십이다. 이 동사가 수행하는 목표와 방식은 “있어야 할 곳”과 “선량한 사람들”과 “해야 할 일”의 조합이다. 시민의 참여 나아가 시민 자치가 우리의 정치와 공공이 가져야 할 존재 이유라면, 그 장소와 주체와 의무가 무엇인지는 마치 교과서에 실린 정답처럼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청사의 표어들에 빠짐없이 실려 있다.

영국 석학 찰스 랜드리가 청년들과 만나 도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_경향DB


문제는 “~느낀다”에 있다. 즉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느끼지 못해서다. 때로는 “선량한 사람들”이 배제되었다거나 이용당했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런 느낌은 정보를 덜 공유했거나 최소한의 정보만 공유한 채 민관 거버넌스를 실행하고 있다고 간주할 때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시민이 체감하는 현실은 비약적 기술 발전과 더불어 더 많은 결정을 더 빨리 하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공무원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 ‘만들어 공급하는(make and supply)’ 결과로는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 이보다는 시민과 함께 ‘느끼고 반응하는(sense and respond)’ 과정에 초점을 둬야 어떤 결과든 기꺼이 책임을 나누려는 시민이 등장한다.

2년 전 한국행정학회는 중앙 및 지방 행정기관 300여곳의 민관 협치 의식을 조사했다. 결과에 따르면 “국민참여 형태의 8단계” 중에서 중앙부처 공무원은 5단계인 “숙의적 자문 형태”에 머물고 광역자치단체 공무원은 4단계인 “시민참여적 기획 형태”까지 주목했다. 반면 기초자치단체 공무원은 3단계인 “시민과 공동협력 형태”까지 높게 인식했다.

이 결과는 마을 단위의 시민 생활권과 행정이 얼마나 밀착했는가에 따른 차이로 보인다. 참고로 1단계는 “시민 직접통치 형태”, 2단계는 “시민에게 권한위임 형태”, 6단계는 “일시적 자문 형태”다. 7단계와 8단계는 “쌍방향 정보소통 형태”와 “일방향 정보소통 형태”다.

이처럼 민관 협치의 수준은 소통의 방향 자체보다 시민 참여의 형태에 달려 있다. “창의적 관료제”를 거버넌스 리더십으로 푼다면 그 출발점은 정보 공유와 그에 입각한 개방적 의사 결정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을 민관이 함께 경험하는 것만이 협치의 관계 역량을 성장시키는 유일한 길이지 싶다.

리처드 레이더는 예의 “~느낀다” 리더십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연결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who we are)’와 ‘우리가 하는 것(what we do)’이라 했다. ‘내가 누구인지(who I am)’를 알게 되는 순간은 당신이 “해봅시다. 그러자면~” 하고 화답하는 것이 ‘당신이 하고 있는 일(what you do)’이 되었을 때이다.

그때 나는 우리의 정체성을 느끼면서 나를 긍정한다. 이것이 “창의적 관료”가 거버넌스 리더십을 발휘하는 시민도시다. 찰스 랜드리의 ‘시민도시’론은 “관료제의 수직적 통제가 관리하는 기계적 도시”가 아니라 “시민들의 수평적 소통과 자기학습이 추동하는 유기체 도시”다.

이런 도시엔 시민 리더십이 가득할 텐데 그것은 “해봅시다. 그러자면~” 하는 공무원들의 헌신에서 출발한다. 지방정부의 공무원들은 더 높은 협치 형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에서 주민자치로의 전환기에 선 그들의 건투를 빈다.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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