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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는 국민이 되길 원했다. 타지에서 테러리스트로 쫓기며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는 자주적인 국가 만들기를 원했다. 친일파는 경복궁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의 국가 만들기를 택했다. 훗날 대한민국 국민이 된 우리는 풍비박산 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에게 빚진 후손이다. 하지만 66년 전 중단된 반민족행위 처벌과 18년 전 폐지된 국정 역사교과서의 부활을 둘러싼 다툼은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도 난민 정체성으로 허우적대고 있음을 드러낸다. 독립운동과 친일의 난민은 국가 만들기를 놓고 광복 70년인 오늘도 투쟁 중이다.

영화 <베테랑>의 마지막 장면에 집단 등장한 그들은 시민이었다. 재벌 3세와 국가 경찰의 싸움 현장을 에워싸고 일제히 사진을 찍는 그들은 28년 전 ‘독재 타도’를 외친 그들과 13년 전 ‘대한민국’을 외친 그들이다. 초법적 권력의 재벌 3세와 제도 권력 일선의 국가 경찰은 물론 시민이 아니다. 시민은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여론을 형성했다 사라지는 개인들의 심리적 연결로 존재한다. 그들 시민은 독립운동과 친일의 난민 싸움터인 국가 만들기 역사전쟁에 수시로 동원되지만 너무 바쁘고 지쳤다. 나날의 생존을 위해 피 터지게 생활과 싸우는 ‘진짜’ 현실 속의 그들은 난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 만들기는 국민을 만들고, 도시 만들기는 시민을 만들었다. 그 국가와 도시엔 지금 ‘재벌인간’과 ‘국가인간’ 그리고 난민이 된 국민과 시민이 남았다. <베테랑>의 난민은 두 종류다. 재벌 회장의 몽둥이질에 “깍지 낄까요”라고 여쭙는 최상무(유해진)의 행로부터 보자. 자식의 영국 유학과 사장 자리라는 미끼를 물고 재벌의 죄를 기꺼이 뒤집어쓴 채 감옥에 가서 “시간 투자”라고 말하는 난민이다. 이 “시간 투자”란 범죄를 저지르고 오지 않을 미래를 기약하는 죄수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 영국에 있을 아내와 자식은 그와 같이 난민이 되었다. 이 난민 가족은 무탈했을까.

트레일러를 모는 배기사(정웅인)의 행로를 보자. 그는 자식을 트레일러에 재우며 운전 중에 빵을 먹고 서울과 부산을 왕복해야 생존할 수 있는 난민이다. 그렇게 번 돈 420만원을 못 받을 때 남는 것은 1인 시위와 돈을 받기 위해 얻어터져야 하는 몸과 이 폭행을 지켜봐야 하는 자식이다. 영화에서 그의 집은 나오지 않으며 가족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도 없다. 그에겐 달리는 트레일러 운전석, 시위 현장, 폭행과 모멸의 사장실, 병원 중환자실만 있다. 그는 정말 회복될 수 있을까. 트라우마를 얻은 자식은 얼마나 망가졌을까. 이 난민 가족은 누구며 어디에서 쉴 수 있을까.



말길을 돌리자. 여기 4916명의 난민이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8216개 초·중등학교에 출강하는 예술강사다. 15년 전부터 시작해 8개 장르로 확대된 국가의 학교예술강사사업에 등록된 예술가다.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로 매년 4916등부터 1등까지 순위가 매겨지는 예술가다. 거주지역 학교에 출강하는 것이 아니고 한 학교에 고정되지도 못해 ‘보따리 예술강사’로 떠돈다. 이들은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이 있고 거주지에서 투표권을 받을 것이며 신용카드나 교통카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하는 장소와 관계하는 사람이 번번이 바뀌는 그들은 난민 예술가다.

난민에게 절실한 것은 2년마다 옮기지 않아도 되는 집과 꾸준하고 일정한 소득 그리고 동료 및 이웃 관계의 안정성이다. 성북구와 SH공사는 정릉동에 20가구의 다세대주택을 착공한다. ‘성북 문화예술인 마을 공공임대주택’ 1호다. 2호와 3호도 추진된다.

이들 예술가는 성북구의 생활임금제를 적용받아 내년 시급 7585원 이상을 보장받을 수 있다. 또 파편처럼 나뉜 사업을 통합하는 정릉 예술마을만들기나 미아리고개 예술마을만들기 같은 종합적 구상 속에서 일할 수 있다. 머잖아 4916명의 난민 예술가에게 지역과 학교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성북구에서는 지속적인 동료 및 이웃 관계를 통해 우애와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성북구에선 45명의 예술강사가 조직되었다. 각기 운영됐던 3가지 예술교육사업을 이들에게 맡겨 예술가와 학생, 교사, 부모, 지역과의 관계 구조를 짜도록 위임했다.

이들은 14개 중학교, 11개 초등학교, 10개 기관의 100여개 단위 예술교육을 통합 진행한다. 7개 장르로 구성된 이들 중 7명은 출강하는 대신 동료를 지원하고 예술강사협동조합 같은 전망과 토대 준비에 전념한다.

이들 45명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고 서울 시민이지만 이들의 ‘진짜’ 희망은 난민 예술가가 아니라 주민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국민 예술가’나 ‘시민 예술가’의 허울을 쓰고 난민이 되어버린 예술가에게 주민으로 산다는 것은 ‘오래된 미래’라 표현해도 좋겠다. 잘사는 국가 만들기나 창조적 도시 만들기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마을 만들기는 예술가에게 ‘진짜’ 삶의 도전일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예술은 지금 국가나 도시가 아니라 지역과 마을의 주민 생활에서 싹트고 있다.


김종휘|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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