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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 나는 왜 어이 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 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가고파’ 중에서)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 (…) /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 향수를 달래려고 술에 취해 하는 말이야 / 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더 좋아’(김상진 ‘고향이 좋아’ 중에서)

20세기 유행가 중 고향을 노래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타향살이의 설움과 고달픔을 향수로 달래는 내용이라서 선율이 애틋하거나 목가적이다. 가난하지만 정이 흐르는 가족과 마을, 계절을 따라 다채롭게 변모하는 풍경이 가사에 담겨 있다. 한국인에게 고향은 공동체의 원형, 돌아가고 싶은 삶터로 여겨져 왔다. 김우창 교수는 ‘고향 그리고 사람이 살아 마땅한 곳은, 대지를 느낄 수 있고 하늘이 보이는 자연 속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김우창 ‘돌아가지 못하는 그러나 돌아가야 할 고향’ 경향신문 2015년 1월1일자)

고향을 회상하는 정서가 널리 공감되어 온 배경에는 초고속으로 진행된 도시화가 있다. 해방 당시 100만명이던 서울 인구가 1988년에 1000만명이 되었으니, 4~5년 만에 100만명씩 늘어난 셈이다. 산업화를 견인했던 수도 서울의 시민들은 거의 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었고,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은 심신의 고단함으로 점철되었다. 고도성장의 열매를 어느 정도 누리기는 했지만, 사람다움을 거부당하거나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럴 때마다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에 젖어들었으리라.

그런데 우리는 고향을 사랑하는가. 향수는 애향심으로 이어지는가. 명절 때마다 ‘민족 대이동’을 하지만 지방과 농촌은 점점 황량해지고 있다. 토건의 망령이 국토를 휩쓸면서 그나마 보전되어온 토속의 삶은 곳곳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시인은 절규한다.

‘왜 마을은 사라지고 있는가? / 왜 무당과 신들은 도망치고 있는가? / 왜 비와 바람이 빈집을 때리고 있는가? // 까치나 강아지나 바라보며 / 담배나 빨고 노래나 부르고 / 늙으면 죽어야지 / 농만 진반 너스레 떨며 / 손주 걱정 돼지 걱정으로 소일해야 할 / 할매와 할아범들이 // 왜 쇠사슬에 몸을 묶는가? / 왜 죽기살기로 싸우는가?’(심보선 ‘왜?’ 중에서)

이런 현실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저 지나간 시절에 대한 상념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추억과 낭만이라도 간직하고 사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아래 세대로 내려갈수록 그리워할 고향조차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많은 도시인들이 ‘대지를 느낄 수 있고 하늘이 보이는 자연 속의 공간’을 오로지 여행객으로서만 경험한다.

추석 연휴 나흘째인 9일 서울역 승강장에서 KTX에 올라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배웅 나온 손자에게 손을 흔들며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고향(ふるさと) 납세’는 도시인과 고향의 관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발상을 일깨워준다. 납세자가 거주지가 아닌 지자체에 기부금을 보내면 지방세에서 그만큼 공제해주는 제도다. 그 지자체가 구상하는 어떤 정책이나 프로젝트를 응원하고자 기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숲속에 시민을 위한 휴식장소를 만든다거나 외딴 섬에서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세우는 일 등이다. 저마다 독특한 사업과 그 취지를 내세우면서 기부금을 모집하는 포털 사이트가 생겨났고, 전국의 지자체들이 갖가지 아이디어로 홍보에 열을 올린다.

부작용도 나타난다. 기부에 대한 보답으로 지역 특산품을 보내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 답례품을 받으려고 기부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또 ‘명품’을 생산할 수 있는 지자체와 그렇지 못한 지자체 사이에 격차가 발생한다. 그러나 물질적인 욕망에 현혹되지 않고 진정으로 그 지역에서 ‘좋은 삶’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이뤄지는 기부도 적지 않다. 그 비중을 높여가기 위해서 지자체들은 기부자들이 해당 사업의 의미와 거기에 결부된 스토리를 공유하고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의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에 이런 제도를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시도가 시사하는 바를 음미할 필요는 있다. 출신지가 아닌 고장에 관심을 갖고 구체적인 정책이나 사회운동에 물심양면으로 후원할 수 있다면, 지방의 활성화에 새로운 출구가 열릴 듯하다. 완전히 새로운 ‘지연’(地緣)을 빚어냄으로써 지방과 농어촌에 기운을 생동시킬 수 있다.

많은 관심을 모으는 귀농이나 귀촌도 그러한 에너지의 자장 속에서 보다 원만하게 이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고향은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난 이들만의 배타적인 공간이 아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 조화로운 공동체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열려 있는 땅이 다음 세대를 위한 고향이 아닐까.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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