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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장래희망은 버스차장이었다. 당시 내 눈에 가장 멋져 보였던 존재가 바로 버스차장이었으니까. 뒷문에 매달려 오라이를 외치던, 전대에 손을 넣었다 빼는 것만으로 에누리 없이 정확하게 거스름돈을 꺼내던,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울고 있던 어린 나에게 버스표 두 장을 쥐여주며 건너편 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타라고 알려주던, 나의 영웅. 칸이 유난히 많던 묵직한 전대는 얼마나 위엄 있고 전문적이어 보이던지. 촤르르 착, 전대 속에서 벌어지던 마법과도 같은 기술과, 안 계시면 오라이, 버스를 움직이게 하던 궁극의 목소리를, 나는 정말이지 갖고 싶었다.

장래 버스차장이 되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전대 기술을 익히는 것이었다. 동전도 없고 전대도 없으니 호주머니 속에 콩이나 과일 씨 같은 것을 넣고, 촤르르 착, 오십원이요 삼십원이오. 그다음은 조금 난도가 높은 버스에 올라타기 기술. 이동을 시작한 버스 안쪽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으면서 도움닫기, 차문에 안정적으로 매달린 후 최종의 오라이. 그 기술을 연마하기에는 장롱만 한 게 없었다. 문짝 위쪽을 두 손으로 잡고 발을 굴러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올라, 비어져 나온 이불을 발로 꾹꾹 누르며, 오라이. 대문이며 방문이며 장롱이며 매달려 움직일 만한 문에는 다 올라타서, 목청 좋게 오라이. 그렇게 몇 개의 경첩을 망가뜨린 후, 나는 누구보다 멋진 버스차장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중, 어쩌다 그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영화의 전체를 다 본 것도 아니었지만, 영화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나이였지만, 우연히 보게 된 <영자의 전성시대>의 한 장면은 나를 극심한 공포로 밀어 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버스차장이 버스에서 떨어질 수도 있구나. 팔을 잃을 수도 있구나. 죽고 싶겠구나. 결국 저렇게 되겠구나. 원더우먼도 범접할 수 없었던 나의 실존하는 액션히어로 버스차장. 그 추락과 몰락. 영화는 영화일 뿐, 영자는 영자일 뿐, 하지만 영자는 버스차장, 버스차장 영자의 끔찍한 이야기, 도대체 저건 무슨 세상이냐. 무섭고 복잡했다. 다만, 버스차장은 내게 더 이상 영웅이 아니었고, 되고 싶거나 닮고 싶은 존재도 아니었으므로, 더 이상 기술 따위는 연마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만 명확했다. 그리고 잊어야 했다. 꿈을 버리는 것을 넘어서 버스차장과의 완전한 결별. 외면하고 싶은 존재, 애초부터 없었던 존재. 버스차장은 사라지고 촤르르 착, 오라이만 남겼다. 그것은 이른 아침의 새소리나 먼 데서 들려오는 풍금소리 같은 것.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 일을 시작했느냐고. 글쎄요, 어쩌다 보니, 그러게 말이어요. 대답도 아닌 대답을 해오면서 대략의 이유를 대왔다. 무언가를 찾아 나섰는데 헤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던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통해 새로운 근육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던가. 그저 누군가에게 밥을 해먹이고 싶었다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대답은 궁색해지고, 궁색해질수록 미궁에 빠졌다.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으며, 거기서 나는 궁극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그래서 찬찬히 되감아 보았다. 식당을 오픈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던 시간과, 메뉴를 위해 요리를 배우던 시간과. 식당을 열겠다고 선언하던 바로 그 순간까지.

그래 시작은 계란 프라이였지. 언젠가 누군가에게도 말했듯이, 그것이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했다. 십오년간 함께 살던 반려견이 죽었고, 늘 함께 있을 것이라 여겨 무심하게 방치해 두었던 순간들을 후회했고, 한동안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서 허우적거렸고, 그러다 문득 생을 마감하기 직전 내가 내민 계란 프라이를 맛있게 먹어주던 순간이 떠올랐고, 그렇게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도록 배려해준 심사가 눈물 나게 고마웠고, 그래서 불현듯 일어나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밥을 해먹여야겠다는 결심이 꼭 식당을 차리겠다는 방향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내 눈에 보인 단 하나의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왜 미궁에 빠져 있는가. 누군가 내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어주면 위안이 되겠구나,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밥을 해 먹이면 더 큰 위안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다면서. 누군가는 일부러 찾아와 내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고, 잘 먹었다고 진심 어린 인사를 해주는데. 그것으로 목표를 이룬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명확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물음에 징징거리는 비겁한 자아가 대답한다. 이게 이런 일일 줄은 몰랐다고, 위안을 주고 위안이 되는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위해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그건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정말 몰랐다고.

오래전, 아무것도 모르고, 버스차장이 되겠다고 기술을 연마하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그때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버스차장의 삶이 아니라, 묵직한 전대를 차고 승객의 승하차를 제어하는 사람, 그 전대를 화려한 손놀림으로 주무를 수 있는 사람, 촤르르 착 오라이의 근사한 리듬을 획득한 사람, 만원버스 안에 사람들을 욱여넣으면서도 차문에 멋지게 매달릴 줄 아는 사람, 가끔은 곤란에 처한 어린아이에게 몇 장의 버스표나 사탕 같은 것을 베풀 줄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매달린 차문이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팔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그런 것 따위는 보이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재빨리 장래희망을 버리는 것으로 버스차장이었던 영자의 삶을 지워버렸을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삶이 아니니 나와는 상관없는 삶. 과연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른 나인가.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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