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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알면 세계가 바뀐다.”

도쿄의 오다이바섬에 위치한 미라이칸(정식 명칭 일본과학기술미래관)에 도착한 관람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말이다.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가 운영하는 이 과학관은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과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우리들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세 주제로 나뉜 상설 전시는 이러한 소개말을 잘 반영한다. 우주, 지구와 생명의 원리를 다루는 과학을 전시한 ‘세계를 탐구하다’, 전 지구에서 수집된 모니터링 정보를 체험할 수 있는 ‘지구와 연결되다’, 그리고 다양한 체험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다’가 그것이다. 미라이칸에서 과학은 세계와 미래로 가는 통로가 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과학관은 실험 도구나 진귀한 동식물의 표본 등을 모으고 선보이는 곳에서, 각 국가의 첨단 기술을 선보이고 경쟁하는 곳으로, 그리고 과학을 만지고 느끼며 체험함으로써 교육하는 곳으로 변모해 왔다. 현대의 과학관은 과거의 조각들을 모으는 곳이자, 가장 앞서나간 현재를 보이는 곳이며, 미래를 앞당겨 체험하는 곳이다.

2001년 문을 연 미라이칸도 관람객의 ‘체험’을 중시한다. 나아가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시도한다. 관람객은 관람료를 지불하고 입장권을 받는 순간부터 질문을 받는다. 필자가 받은 입장권은 “사람은 왜 로봇을 만드는 것일까?”라고 물었다. 3층의 ‘미래를 만들다’ 전시장 곳곳에서도 전시물은 관람객에게 기술과 인간,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빼닮은 로봇으로 유명한 이시구로 히로시교수의 로봇들은 “인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관람객은 생명체의 신경 회로를 모방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알터’를 마주한다. 외형적으로는 얼굴과 두 손만 인간의 형상을 하고, 금속 뼈대, 전기 회로와 전지가 모두 드러난 채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다소 기괴한 움직임과 소리를 낸다. 또 여성의 모습으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복장을 한 ‘오토나로이드’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미리 입력된 알고리즘, 혹은 원격 조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시구로 교수의 로봇들은 관람객에게 기계장치가 인간과 같이 느껴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통해 인간됨 혹은 인간과 같음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생각해보기를 요청한다.

50년 뒤 후손들로부터 도착한 다급한 메시지로 시작하는 ‘미래역산사고(Backward from the Future)’ 전시는 지구의 미래를 묻는다. 기후 변화, 물 부족, 언어 다양성 보존, 불평등과 가난 해소 등 지구가 직면한 여러 문제 중 해결하고 싶은 문제 하나를 선택한 관람객은 지구의 수명을 늘리는 게임을 한다. 지구 수명을 단축하는 “장해” 점수는 피하고, 지구의 수명을 연장하는 “진보” 점수를 쌓을 수 있는 지구의 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이 전시는 시점의 전환과 게임을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의 행동이 지구의 미래를 만드는 것임을 체험하도록 한다.

많은 관람객이 인상 깊은 전시로 꼽는 ‘노벨 Q’는 질문 자체가 전시의 대상이다. 관람객이 인생 동안 생각해보길 바라는 질문 하나를 제시해 달라는 과학관의 요청에 따라 미라이칸을 방문한 23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자필로 적은 질문들이 ‘Q’ 모양을 한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있다. 이들은 각양각색의 필체로 심오하거나 독특한 질문을 던진다. 200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아브리코소프는 이렇게 묻는다. “왜 고양이는 항상 발로 떨어지는가?”

전시물을 통해 미라이칸은 관람객에게 ‘미래’를 묻는다. 그리고 미래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국의 과학관도 미래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은 ‘2030미래도시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에 변화할 가정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옷을 갈아입지 않고도 어울리는지 확인하고, 침대에 눕고 화장실에 가는 것으로도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오래된 상상 속 미래가 이제 정말 실현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립중앙과학관은 2019년 개관을 목표로 가칭 ‘미래기술전시관’ 건립도 준비하고 있다. 전시 주제는 ‘4차산업 기술혁명으로 변화된 미래사회’. ‘미래 이해’ ‘미래 공감’ ‘미래 예측’ ‘미래 준비’의 순서로 연결된 스토리라인을 따라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으로 인해 변화될 미래 사회 모습을 ‘초연결, 초지능, 융합된 미래 일상생활을 구현’함으로써 제시하고, ‘변화하는 사회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위한 문화예술적 감성을 갖춘 새로운 인재상’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겠다는 계획이다.

미라이칸이 열린 미래를 제시하고자 했다면, 국립중앙과학관이 보여주고자 하는 미래는 닫혀있다. 계획대로라면 새로운 전시관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이라고 이야기되는 몇몇 기술에 잠식당한 미래를 보여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읊을 수 있게 된 기술들이 과연 ‘미래기술’인지도 의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의 중심에 기술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기술이 주도하는 변화에 적응하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우리는 이해하고, 공감하고, 예측하고, 준비한다. 우리가 만들어 나갈 미래는 없다.

국립광주과학관의 과학문화전시를 담당하는 조숙경 책임연구원은 저서 <세계의 과학관>에서 “과학 박물관이야말로 미래를 만나는 곳이고 또 미래를 꿈꾸는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미래를 꿈꾸는 곳이 되려면 과학관은 관람객에게 열린 미래를 보여주어야 한다.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답을 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닫힌 미래를 전시한 과학관에서는 그저 가까운 미래를 잠깐 만나볼 수 있을 뿐이다.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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