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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경향시민대학 학장

총선을 앞둔 지금, 필자는 두 가지 의문을 갖는다. 하나는 복지나 재벌개혁과는 달리 비정규직 문제는 왜 중대 쟁점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젊은 세대의 노동문제는 누가 대표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근 나는 하급 서비스직 부문에서 시급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청년유니온’ 조합원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종필씨는 피자 배달 일을 했다. 유사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은 높았지만 오토바이 사고 위험이 컸다.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고, 청년유니온 1기 조직팀장을 지냈다. 서유란씨는 해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네일아트 기술을 배울 학원비를 충당하고자 대형마트 안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는 시급 노동자였다. 이번에 청년유니온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수민씨는 신용정보사의 정규직 직원이다. 월 120만~130만원의 급여로는 부족해 퇴근 후 집근처 커피가게에서 일주일에 4일, 저녁 8시에서 새벽 1시까지 월 40만~45만원의 추가 수입을 위해 일을 한다. 현재 청년유니온 홍보팀장이다. 대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의 일환으로 청년유니온 창설에 참여했던 김형근씨는 24시간 편의점에서 주 3일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 야간근무를 했다. 현재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듣는 청년유니온 이야기는, 내게는 무척 생소하면서도 매혹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청년유니온 주최로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청년자립토크쇼’ l 출처:경향DB

새로운 형태의 이 노동조합은 2010년 3월에 출범했다. 지금은 전국조직으로서 500여명의 회원이 있다. 취업의 어려움, 불안정한 고용조건, 불투명한 미래, 등록금 압박, 경쟁 가열화 등으로 촉발된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와 그로 인한 투표율 증가가 선거 지형을 크게 바꾸기 시작한 것은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였다. 청년유니온의 시작은 그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거나 최소한 중첩된다. 그러한 정치변화를 그들이 선도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누구보다 먼저 행동에 나섰던 것은 분명하다. 이번 총선은 그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치러지게 되었고, 따라서 젊은 세대에 어떻게든 어필하려는 것이 한때 정당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책임 있는 정책적 대안보다 청년을 공천하는 것 그 자체에 매몰된 느낌을 받게 된다. 여전히 우리사회의 청년 노동문제는 아직 중대 정치 의제가 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청년유니온 역시 야당들의 비례대표 후보 선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결실을 얻지 못했다. 청년유니온은 이제 겨우 첫 번째 임원 임기를 마쳤고, 지난 2월 총회를 통해 2기 간부진을 선출한 아주 젊은 조직이다. 필자는 몇 가지 이유에서 이 새로운 신생 노동운동의 실험에 주목한다.

첫째,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과거와는 다른 방식을 발전시켰고, 두 운동 모두에서 질적 변화를 수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은 노동현장으로 이어져 사실상 한국 노동운동의 지도세력 및 지도이념을 만들어냈다.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대부분 교육받은 도시중산층의 배경을 가진 이들의 노동운동이 자신들의 실제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의 운동과 그들의 계급은 서로 분리된 것이었다. 따라서 실제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 내지 사회경제적 권리를 향상시키는 데 운동의 중심이 두어졌던 것이 아니라, “반제 민족해방” 또는 “사회주의 노동해방”의 이념에 “복무”하려 했다. 그것은 일종의 ‘중산층 급진주의’ 내지 ‘정서적 급진주의’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 유산은 ‘내용 없는 언어들의 공격성’이나 ‘진리를 독점한 듯 내세우는 도덕적 우월의식’ 등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앞 세대와는 달리, 청년유니온 조직자들이 운동을 조직하게 된 동인과 추진력은, 그들이 직면하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실제 생활경험으로부터 나온 자신과 동료들의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의 운동은 실제적이고 또 실용적이었다. 김형근씨는 “대졸자가 좋은 일자리를 갖는 것은 6%일 뿐이다. 그 가운데 정규직은 임금수준도 높고 노조도 있다. 반면 대부분의 청년들은 무권리 상태이다. 기존 노조의 벽은 높다.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들의 조직이 필요했다”라고 말한다. 이종필씨는 “시간제 아르바이트, 학비조달, 취업 불안, 고용불안정, 저임금 문제들에 대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화, 의제화하는 것이 필요했다”라고 말한다. “당사자 스스로” 문제 해결자로 나선다는 말이 특별하게 들렸다.

둘째, 사업장에 기반을 둔 기존의 경직적 조직 형태가 아니라 온라인공간을 활용하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조직 형태가 가능해짐에 따라, 종래에는 조직하기 어려운 광범한 하급 서비스부문 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조직화를 위한 별다른 자원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인터넷 매체라는 통신수단에 힘입어 전국적인 조직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임원 선출에서부터 의제에 관한 토의, 회원 간의 의사소통 등 많은 활동을 온라인공간에서 하고 있다. 운영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 조합비 부담도 낮다. 처음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장이 노동법을 위배하면서까지 청년유니온에 노조신고필증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은, 광범한 청년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우려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청년유니온은 작은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하급 서비스부문 노동자들과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작년에는 유명한 커피전문점들을 상대로 수천만원의 주휴수당을 받아내, 수백명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뒤늦게나마 체불된 임금의 한 부분을 돌려주는 큰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수민씨는 처음 인터넷을 통해 청년유니온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무료상담을 받으면서 근로기준법에 따른 주휴수당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최저임금이 영국의 절반도 안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희망을 크게 안 가졌는데 노조활동이 큰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서유란씨는 청년유니온의 무료상담 덕분에 주휴수당과 가산수당을 받았다. 지금은 청년유니온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말한다.

셋째, 청년유니온 같은 세대노조의 발전은 민주주의에서 대표의 직접성을 확대하고, 정당으로 하여금 그들이 공약한 사회경제적 사안에 대해 책임성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밑으로부터의 시민 참여보다는 지식인과 전문가 엘리트집단의 참여만을 확대시켰다. 그러는 사이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하층배제적인 차별 구조는 개선되지 못했다. 민주화의 효과가 갖는 이런 계층적 편향성만큼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도 없다. 이런 조건에서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문제를 집약하고 있는 신규 노동시장 진입자들의 권익과 의사를 대표할 수 있게 하는, 변화의 물꼬를 트는데 청년유니온의 기여가 결정적일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들은 정치참여에 있어 상당히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고, 매우 유연하고 현실적이었다. 이념적 성향에서 다원적이며, 실용적인 관점에서 현실정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김형근 사무국장은 경제민주화라는 포괄적인 테두리 안에서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저임금 구조, 정규·비정규직 양극화, 고용불안정 문제를 개선하는 의제들을 꾸준히 밀고나갈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새누리당을 제외하고는 여러 다른 정당들과 연대할 준비가 돼 있고, 정치권 밖의 기존 노동운동은 물론 여러 다른 운동조직들, 시민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민주화운동 시기 앞 세대의 노동운동에 비한다면, 이들 신세대들의 노동운동은 정치참여를 포함한 모든 문제에서 교조적이기보다는 훨씬 실천적이었다.

아직 맹아적 단계에 있기 때문에 청년유니온이 어떤 발전의 궤적을 그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 4인의 청년유니온 활동가를 통해 받은 인상은, 이념과 정파에 의해 계도된 과거의 노동운동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환상에 빠져 있지 않았고 철저하게 실제의 현실과 대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절제된 태도야말로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주의 발전에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기에, 그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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