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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는 두 군데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한 곳에서는 정보기관이나 미국 국가안보국(NSA)도 해킹이 어려운 슈어스폿(Surespot), 텔레그램(Telegram) 같은 암호화된 메신저를 사용, 지도부와 교신하면서 미국의 감청을 따돌렸다. 또 다른 곳은 100명 가까이 사망한 바타클랑 극장을 비롯해 젊은이들의 유동인구가 많은 7개 지역이었다. IP 추적이 불가능한 다크웹도 한몫했다. IS 테러리스트들은 다크웹을 전 세계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접선장소로 활용했다.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인터넷은 신이 선사한 선물(?)이 되고 말았다.

유럽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스카이프에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힘들었던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사를 통해 스카이프를 통째로 사들였다. 그후부터 막강하던 스카이프의 보안시스템이 허술해졌다. 미국이 감청시스템에 의도적으로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의 감청시스템을 우회했다. 얀 얌본 벨기에 내무장관은 “IS가 테러 공격 모의와 대원 모집에 일본 소니사 게임인 ‘플레이스테이션4(PS4)’ 네트워크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허를 찌르는 전략이다. 그들은 미국이나 서방세계가 놓은 그물망을 피해 생각지도 않은 게이머들의 놀이터 PS4에서 접선을 하고, 테러 기지국으로 사용했다. 9·11 테러나 일본의 쓰나미, 메르스 사태까지 겪으면서 필자는 이제 현실은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하고, 예측불가한 위험에 괴멸할 수도 있다는 현실감각(?)에 눈을 뜨게 됐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 1, 2위를 다투며 폭발적인 매출 신장으로 시장 장악에 나선 샤오미는 애플 베끼기로 더 잘 알려진 회사다. 이 회사는 스마트TV, 정수기 등 가전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면서 사물인터넷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샤오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생각지 않은 곳에서 주목받게 된다. 신규 샤오미 스마트폰에서 악성코드가 발견된 것. 샤오미 측에서는 유통판매점에서 저지른 일로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을뿐더러,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에도 러시아에 수입된 중국산 다리미와 전기주전자에서 해킹 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게다가 중국산 폐쇄회로(CC)TV나 전자담배 충전기 등에서 멀웨어가 발견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중국 정부가 개입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동안 중국이 미국 NSA, 중앙정보국(CIA)은 물론 영국 등 전 세계 120여개국을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해킹해, 기밀문서와 정보들을 빼낸 행동을 감안한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미국 정보기관 등에서는 아예 중국산 정보기술(IT) 제품 사용금지령을 내릴 정도다. 중국은 구글이나 페이스북도 상황에 따라 국민들과 차단시키고, 감시를 일삼고 있다. 그들이 샤오미 스마트폰에 악성코드를 심어, 전 세계를 감시하는 스파이폰으로 활용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미국마저 구글과 페이스북, 야후 등의 백도어로 드나들면서 사람들의 개인정보와 기밀 등을 마음대로 확인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을 감안한다면.



중국 스마트폰 '샤오미'_경향DB


이 같은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인터넷 세상과 앞으로 전개될 사물인터넷 때문이다. 누군가가 잘못된 신호나 가짜 신호를 의도적으로 보내게 된다면 홈서버를 통해 집의 가스밸브를 열어버릴 수 있다. 심박기 위조·변조로 전류량을 과잉공급해 생명을 위협하거나 악성코드에 감염된 차량진단앱을 통해 자동차를 원격 제어할 수도 있다. 커피포트나 냉장고, 세탁기, 가스레인지 등 가전용품은 보안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모두 무기가 될 수 있다. 전 세계는 파리 테러를 바라보면서 보안이 뚫리면(그것이 물리적이든, 네트워크에서든) 얼마나 위험하고 불행한 사태가 전개되는지 알게 됐다. 그것이 단지 오프라인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21세기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디지털 혁명의 소산들이 만들어 놓은 디바이스들 덕에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디바이스들은 언제든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면 테러 무기가 될 수 있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조직이나 군사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테러범들에게 유리한 열린공간이 무한대로 펼쳐진다.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 테러리스트들에게는 국가의 경계도, 무기의 한계도 뛰어넘는 인터넷이 존재한다. IS는 지금 어디서 또 다른 테러 감행을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떤 디바이스를 좀비화시키고, 어떤 사회와 국가를 무력화시킬지 아무도 모른다. 네트워크는 미래의 새로운 전쟁터가 될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선전도구나 신병 모집, 작전 지시 채널로 네트워크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IS는 이번 사건에서 테러리스트들이 결코 사이버전이나 정보력에서 미국 등에 뒤지지 않는 것은 물론 역으로 이를 활용, 교활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셈이다. 비극이 멈춰지기를 바랄 뿐이다.



최희원 | ‘해커묵시록’ 작가 · 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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