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광장의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대통령 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후보들이 저마다 사이버 공간으로 들어오고 있다. 포털,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선캠프가 움직이고 있다. 그곳이 작전의 중심이 되고 있다. 캠프마다 여론을 주도할 ‘댓글알바’도 모집 중일 것이다. 언론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무차별 살포할 상대후보의 치명적 약점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사이버 전사들의 여론몰이는 후보의 당락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를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미국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을 검색할 때 단어 자동완성 기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야후와 빙(Bing)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단어 뒤에 ‘cri’를 입력하면 crime(범죄), criminal(범죄자) 등의 단어가 차례로 나타났다. 하지만 구글에서는 범죄 관련 단어는 제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클린턴을 검색할 때 불리한 말이 표시되지 않도록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편에서는 구글의 이 같은 여론조작이 투표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구글의 전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는 클린턴 지지자로 잘 알려져 있기에 해명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구글이 편파적 조작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한국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검색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는 검색자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네이버는 실시간 검색어 조작으로 여러 차례 도마에 오르곤 했다. 얼마전 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검증위원회가 공개한 보고서에는 네이버가 2012년 ‘법령이나 행정·사법기관의 요청이 있을 때’ 특정 키워드를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제외할 수 있는 내부지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상 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지만 네이버는 한번도 정부당국의 요청으로 실검을 삭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물론 이 바닥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곧이 믿는 사람은 없다.

네이버는 지난해 매출 4조원에 영업이익 1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오프라인 신문과 KBS·SBS 등 지상파 3사의 매출을 합친 2조8000억원보다 1조원 이상 많은 규모다. 네이버를 거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치 구글이 전 세계에서 무차별적 영향력을 행사하듯 네이버는 국내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거대공룡이 되어가고 있다. 만일 이런 네이버가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검색 조작에 깊숙이 개입한다고 가정해보자. 특정 후보를 위해 대부분의 부정적인 검색 결과를 배제한다. 또 검색 결과 중에서 첫 페이지와 두번째 페이지에는 긍정적인 내용들이 담긴 링크를 배치한다. 부정적인 내용의 링크는 세번째 페이지부터 배치시킨다. 이용자 중 대다수는 세번째 페이지 이후에 나타난 검색 결과는 거의 읽어보지 않는다. 상대방 후보자를 실검으로 조작해 클릭을 유도하고, 약점과 부정적 내용이 담긴 링크로 유도한다. 미국 심리학자 앱스타인은 “부정적인 검색어가 나오면 클릭수가 두 배나 늘어날뿐더러 선거에서 표를 행사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면서 “수십만에서 300여만 유권자의 표심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의구심을 품은 상대편 진영이나 누리꾼들이 의혹을 제기하겠지만, 네이버가 검색 알고리즘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 검색 알고리즘을 공개하는 것은 기술을 공개하는 것이고, 이는 영업비밀을 공개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이 때로는 편파적인 검색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이제까지 검색 알고리즘을 공개한 적은 없었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로 검색 알고리즘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득이하게 공개한다 해도 오히려 해커들이 침투해서 검색 순위를 조작하는 등 부작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검색은 인터넷과 현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대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로는 우리의 인식 범위를 결정하기도 하고, 행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책이나 영화, 병원, 학교, 디지털기술 등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근 들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니 그보다 더 비현실적인 현실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음모론자는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현실주의자다. 시민사회와 누리꾼 등이 매의 눈으로 혹시 조작된 검색 결과나 실시간 검색어, 알바댓글 등이 있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한다. 사소한 댓글이나 여론조작, 네이버의 검색조작 등으로 역사가 바뀔지 모른다. ‘아직도 그런 일이 가능할까? 4차 혁명을 바라보는 첨단 IT시대에 그게 말이나 돼?’라고 의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 쉽게 벌어질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조작된 여론에 영향을 받아 자격 없는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 얼마나 위험하고 불행한 미래를 맞게 될 것인가.

최희원 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해커묵시록>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