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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으로 난감한 인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는 정치적으로 넘어서는 안될 금기의 단어들을 거침없이 내뱉고, 트위터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비난을 쏟아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바꾼다. 워싱턴 포스트는 “말 바꾸기의 제왕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기사를 썼고,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모욕한 사람들의 명단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거의 400명에 육박한다. 우리 입장에서 난처한 것은 바로 그 예측불허의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열쇠를 쥔 핵심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알려면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지난달 6일 오후(현지시간)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주함부르크 미국총영사관 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3국 정상만찬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그는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어떤 정치적인 분석도 잘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이해하기 어렵다면 컴퓨터에 그를 이해하라고 주문해보자. 이미 알파고는 이세돌과 커제를 이기지 않았던가. 컴퓨터라면 그를 이해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는 날마다 트위터에 수많은 말들을 남기고 있다. 하루 평균 다섯 개의 트윗인데, 이것은 충분한 데이터를 제공해준다. 분석방법은 토픽 모델링이라는 기계학습의 일종이다. 컴퓨터가 글을 읽고, 이런 단어들이 이 정도로 분포되어 있다면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이라고 추정하는 방식이다. 예상치 못한 글을 읽었을 때 사람은 경악하지만 컴퓨터는 냉정을 유지한다. 상식을 벗어나거나 일관성을 잃은 글을 읽었을 때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컴퓨터는 사람이 보지 못한 숨은 일관성을 찾아낸다.

자, 이제 분석을 시작해보자. 컴퓨터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들을 읽었더니 거기에는 13개의 소주제들이 있었고, 이것들은 세 개의 대주제로 깔끔하게 묶여 있었다. 대주제1에는 미국 내 고용창출이 중심에 있는데, 이것을 둘러싸고 이슬람 테러리즘 비난, 국경 문제를 둘러싼 멕시코 비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 북한 비난이 함께 놓여있다. 고용이 왜 외교 이슈들과 같이 묶여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고용은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기술 변동으로 가장 많이 일자리를 잃고 고립주의적이고 배타적인 우파로 돌아선 사람들이 바로 트럼프를 당선시켜 준 중하층 백인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자리를 되돌려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이때 이슬람, 멕시코, 중국, 북한은 일자리를 뺏어가거나 혹은 고용창출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좋은 핑계가 되어준다. 적어도 컴퓨터는 트럼프의 속마음에서 주요 외교 이슈들이 사실은 국내용이라고 읽어낸 셈이다.

대주제2는 민주당과 언론에 대한 비난이다. 특히 언론에 대한 비난이 압도적인데, 원래도 많았지만 러시아 스캔들 이후 폭증하고 있다. 대주제1에는 고용과 외국이라는, 별로 개연성 없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고용이 안 늘어나는게 정말 외국 때문인지, 언론은 이 부분에서 사실관계를 검증하려고 하기 때문에 접근을 허락해서는 안될 집단이다. 그가 언론을 비난할 때 주로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팩트 체크’를 허용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팩트 체크 당했다면 그 뉴스가 가짜라는 주장이다.

대주제3은 선거 승리 이후 대국민 감사,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 같은 뻔한 지지자용 메시지들인데, 의외인 것은 아베 일본 총리가 여기에 함께 묶여있다는 점이다. 언제 바뀔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는 트럼프는 확실히 아베를 좋아한다. 걸핏하면 모욕을 주는 다른 나라 정상들과는 달리, 아베와 골프 친 이야기 같은 것들을 자랑삼아 늘어놓는다. 트럼프에게 아베는 자신을 알아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유일한 외국 정상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와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비난이 얼마나 거센 것이었는지를 기억한다면, 아베에 대한 이러한 특별대우는 놀랍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베는 트럼프 당선 직후 제일 먼저 트럼프 타워에 달려갔고, 수시로 통화를 하며 그와 친분을 쌓고 그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로 일본은 정상 간 친목과 실무자 간 협상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써왔고 상당 부분 성공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이다. 세계의 비난을 받는 미국 대통령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우에 따라 굴욕외교로 비칠 수 있음에도 아베는 그것을 했다. 한반도에 전쟁이 운위되고 FTA 재협상이 시동을 거는 시점이다. 적어도 컴퓨터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이 상당부분 국내용일 수 있다고 읽어냈다. 아베처럼 정상 간 친목이 될지 아니면 트럼프의 “생큐, 삼성” 트윗처럼 미국 내 일자리 창출 압박을 결국은 들어주는 것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국내용 선물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외교정책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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