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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없는 전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공론화에 대한 여론전 말이다. 당사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나 관련 분야 전문가, 정치권,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언론도 매일같이 총력을 기울인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글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이슈를 짚어보려고 한다.

첫째, 애초에 공론화가 왜 필요해졌는지의 문제이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다. 공론화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독일의 사례를 든다. 독일에서 공론화를 거쳐 탈핵 결정에 도달하기까지 25년이 걸렸는데, 한국에서는 3개월 만에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다. 맞다. 우리도 차분하게 긴 시간을 가지고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독일은 연정과 합의제 민주주의의 긴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에너지 미래’라고 하는 하나의 의제를 25년간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무조건적인 발목잡기와 승자독식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장 하지 않으면 못한다. 한국 상황에서 긴 시간을 가지고 공론화하자는 것은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돌려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1야당 대표가 청와대 영수회담 참석조차 거부하는 상황에서 독일 사례를 들어 공론화를 비판하는 것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뜻일 뿐이다.

공론화는 그 기본 정신에 있어서 숙의 민주주의와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표 계산이 아니다.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독립적이고 불편부당한 숙의를 통해 제대로 된 합의에 도달하는 종류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잘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공론화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한국과 같은 극한대결의 정치에 합의제 민주주의의 요소를 도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촛불광장의 함성 속에서 제도권 정치와 시민 정치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공론화라는 장치를 통해 일정 부분 시민의 합의된 뜻을 제도권에 반영하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실험이기도 하다. 여야가 대립할 땐 대립하더라도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에서 힘을 합치고 있다면 공론화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비판은 민주주의가 나아질 기회를 박탈할 뿐이다. 독일의 탈핵결정을 주도한 원자력 윤리위원회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원자력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열린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것이다. (중략) (대안을 찾는 것은)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은 시민사회를 강화시킨다.”

둘째, 투명성의 문제이다. 한수원을 비롯한 관련 기관들이 그동안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정하게 활동해왔느냐는 질문이다. 원자력에 대한 외국의 공론조사 사례를 보면,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반드시 원전 선호도가 낮아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크게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어쩌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경우에도 원자력을 둘러싼 불투명한 먹이사슬의 고리만 제거되더라도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혈세를 절약하는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한수원은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납품비리, 정치권 커넥션, 수뢰 의혹만 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갈 길이 멀고도 멀다. 그럼에도 공론화 국면에서 친원전 보도를 하는 매체에 집중적인 광고비 지원을 했다는 사실이 녹색당의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드러났다. 후쿠시마 사태를 악화시킨 도쿄전력이 정확하게 같은 짓을 했었다.

한국의 에너지 미래와 관련된 활동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있다. 탈핵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에너지 미래와 관련한 토론회 정도만 한번 하자고 해도 그동안 한수원이나 주변 기관, 산업부 등 관련 부처는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원전 증설로 갈 텐데 뭐하러 토론이니 뭐니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는 태도로 일관해 온 것이다. 에너지 미래에 대한 논의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혁신산업이기도 한데, 아예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탈핵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니 자신들의 폐쇄적 태도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공론화 과정이 급한 것이 그렇게 문제라면 시간이 자신들 편이었던 보수정권 9년 동안에는 왜 아무런 토론도, 협의도 하지 않았는가. 공론화를 통해 공사 계속이라는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투명성만은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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