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추석 연휴를 앞둔 시점에 정치보복 논란이 뜨겁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을 빌미로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김경수 의원을 필두로 더불어민주당이 강력 반발하자 정 의원은 “국가정보원이나 국가정보기관이 정치보복을 하지 말자는 것”이 적폐청산이라고 재반박했다. 김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고, 정 의원은 이명박 청와대의 정무수석이었다. 그러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정치보복 프레임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다른 한편으로 리얼미터가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사상 최저치인 65.6%로 나타났는데, 이는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 최고치였던 82.3%와 비교하면 16.7%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넉달 전 지지층의 5분의 1 정도가 빠져나간 셈인데, 주로 빠져나간 사람들은 5060세대, TK와 PK 일부, 주부·자영업자·무직자 등으로 박근혜와 자유한국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실제로 정치보복인지 아닌지를 떠나, 길고 긴 추석 연휴 동안 다섯 가구 중 한 가구의 명절 밥상머리에서는 적폐청산한다는 새 정부의 행태가 지난 정부와 다를 게 뭐가 있냐는 얘기들이 오갈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 자체가 빈사상태의 자유한국당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자유한국당은 도대체 무엇을 놓고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는 것일까. 대뜸 국정원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을 말하는 것일 게다. 수사의 칼날이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 정부에까지 겨눠지자 지난 정부도 아니고 지지난 정부까지 ‘터는’ 것은 ‘치사’하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필자 또한 정치보복에 적극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치보복일까? 과거에 당한 것을 되갚아주고 싶은 보복의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수사하고 처벌해야 할 실제의 범죄행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만약 있었다면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정치적 관용의 한계를 넘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가 핵심이다.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서 온라인 빅데이터를 분석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 18대 대선에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수의 ‘알바’가 활동했고 그들이 정치적 공론장을 얼마나 심각하게 망쳐놓았는지를. 그들의 활동이 선거결과를 뒤바꾸어 놓았는지 여부를 확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 나라의 정치적 공론장을 파괴했다는 점이다. 당시 분석가들은 온라인 빅데이터를 분석하며 계속해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규모로 이렇게 체계적으로 활동하려면 잘 갖추어진 조직과 엄청난 예산이 필요할 텐데, 그걸 제공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짐작은 가지만 증거는 없었다. 이제야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을 보면 역시나 그 짐작이 맞았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에 세금과 조직을 제공했고, 그들의 활동은 그 당시 청와대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를 수호해야 할 제1의 책임을 가진 대통령이, 청와대가,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썼다면 헌법 위반이고, 선거법 위반이고, 국정원법 위반이다. 보복의 감정이 있건 없건 수사하고 처벌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이고, 정치적 관용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사안이다. 그러니 정치보복 운운은 도무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이것은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정치보복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설명해도 여전히 빠져나간 5분의 1은 정치보복이라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제시한 이유들 중에 정치보복은 3~4위를 오가는 중요한 이유이다. 정치보복이 아닌데, 그 프레임에 빠지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래도 자꾸만 그 프레임에 발목을 잡힌다.

그 이유가 뭘까. 나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촛불정신’ 이외의 다른 정치동력을 찾아내지 못한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가 지나간 시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면 비어있는 것은 다가오는 시대의 비전에 접근해가는 정치이다. 적폐청산이 새 시대의 비전에 접근해가는 불편부당한 과정임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누구도 감히 정치보복을 입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밀월의 시간은 끝나가고 성적표를 받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비전을 세우는 것도 아직 지지율이 높을 때 가능한 일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