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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두고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고 공론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지난 한 주 내내 상당수의 언론은 이 결정을 강력히 비판했다. 비판의 주요 논거 중 하나는 원자력과 같은 고도의 기술적 문제를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에게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여론조사 하나를 소개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인 2011년 5월 일본 아사히신문은 7개국에서 원전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일본, 한국, 독일,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다. 그런데 뜻밖에 사고의 당사국인 일본보다 독일과 한국의 조사결과가 훨씬 눈길을 끌었다. 독일은 원전 안전성에 대해 큰 걱정은 안 하지만 압도적으로 줄이자는 의견이고, 한국은 많이 걱정되지만 그냥 두자는 의견이었다. 알려졌다시피 독일은 그 이후 탈핵결정에 이르렀고, 한국은 일단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것을 논의해보자는 단계이다.

2일 장맛비와 안개가 덮인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전 주변이 을씨년스럽다. 왼쪽 위는 내년에 준공될 원전 4호기, 오른쪽 골리앗 크레인이 있는 곳은 원전 5·6호기 건설현장, 아래는 5·6호기 부대시설 부지로 철거 중인 서생면 신리 부락이다. 연합뉴스

왜 한국인들은 몹시 걱정스럽지만 그냥 두자고 했을까?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비용 걱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전기요금 오를까 걱정부터 국가적으로는 원전산업의 경쟁력에 이르기까지. 다른 하나는 낮은 정치효능감이다. 걱정은 되지만 줄이자고 한들 그게 되겠어? 이런 생각 말이다. 비용의 문제는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다. 원자력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어떤 종류의 신재생에너지냐에 따라, 지역별 특성에 따라, 신재생에너지에 축적된 투자 및 기술 수준에 따라 다르다. 신재생에너지라고 해서 무조건 청정에너지인 것만도 아니고, 안정성에 대한 질문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처럼 이슈가 많다는 것은 적어도 어느 한쪽이 좋다고 무조건 믿기보다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분석하고 합의해야 할 여지가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원자력이 무조건 싼 것도 아니고 무조건 위험한 것도 아니다. 분석과 합의가 필요하다.

걱정되지만 해봐야 안될 것 같으니 그냥 두자는 것은 우리의 운명을 소수의 정치인과 전문가, 관료와 이익집단의 손에 맡기자는 뜻이 된다. 에너지 공론화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태도를 부추긴다는 면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면이 있다. 기술적 전문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기술은 사람과 조직이 운용한다. 1984년에 출판된 찰스 페로의 명저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는 바로 이 부분을 명쾌하게 지적한 책이다. 연구에 따르면 설사 기술은 입증됐다 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과 조직은 입증되지 않았다. 고도로 복잡한, 그리고 경우에 따라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기술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과 조직에 맡겨졌을 때 사고의 가능성은 상존하며 그런 종류의 사고들은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에서 ‘정상 사고’라고 부른다. 원전을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자칫 수많은 노력의 산물인 원자력 기술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원자력 전문가들이 느낄 수 있는 좌절감은 이해한다. 하지만 기술적 전문성이 인간과 조직의 한계까지 극복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술이 안전하니 원전을 계속 늘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일종의 월권행위에 해당한다. 기술적 전문성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조건에 불과한 전문가주의에만 입각해서 에너지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탄탄한 기술의 토대 위에 민주적 합의가 필요하다.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시킨 교수로부터 시작된 공론조사는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배심원단을 대상으로 찬반 양측이 서로의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하며 그 과정을 대중과 공유한 끝에 충분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합의에 도달한다. 기술적 전문성은 이 과정에서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 잘만 이루어지면 숙의과정을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덴마크, 미국, 호주, 그리스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수십차례 활용해본 경험도 있다. 원자력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다.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공론조사의 외국 사례들을 보면 원자력에 대한 선호도는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투명성에 대한 요구와 최종 결정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크게 늘어난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꽉 막혀있는 정치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단기적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원전을 늘리든, 줄이든 에너지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경험처럼 장기적이고 원활한 협치가 필요한데 여의도의 경색은 적어도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그대로 갈 것이다. 사석에서는 야당 의원들도 현재의 정치체제하에서 악역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협치의 바탕이 되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공론화의 경험은 민주주의를 고양시키고 국가가 작동하게 해주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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