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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생명을 잃은 대통령 앞에서 국정을 장악한 총리가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가 할 일은 한마음 한뜻으로 무너진 경제를 살리는  것입니다.” 국정 안정과 경제 회복을 강조하는 총리에게 질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그 질서는 국민 1만5000명의 희생을 감춰야 가능했다. 탄핵소추 이틀 전 개봉한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다룬 재난 영화 <판도라>는 극장 밖 현실의 데자뷔로 가득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현실에서 “경제가 백척간두의 위기”라는 우려가 광장을 겨냥하고 있다. ‘정치는 탄핵당했어도 경제는 굴러가게 하라’ ‘광장을 향했던 민심을 돌려 경제 회생에 집중하라’는 주문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그동안 존재감 없던 경제부총리는 “중심을 잡고 가겠다”며 지휘계통의 질서를 다잡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탄핵이 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진실은 가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광장의 촛불을 정치혁명으로만 규정하기에는 그 넓고 깊은 분노를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사회 불평등과 고착화하는 계급질서에 대한 탄핵이자, 양극화를 부추기는 경제질서에 대한 탄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 정국→불확실성 증대→경제위기 증폭’이라는 도식에 막혀 촛불의 힘은 경제로의 확장을 방해받고 있다.

 

영화 '판도라' 포스터

 

정치와 경제의 경계는 두부 자르듯 가를 수 없다. 경제 역시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선택의 문제이고,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조정하는 정치적 과정과 설득을 위한 정치적 권위가 필요하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은 ‘1원1표’의 경제적 운영 원리가 ‘1인1표’의 민주주의 작동 원리 위에 서면서 정치를 경제에 종속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욕구들을 전부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중 일부를 선택하는 것이 경제와 정치의 본질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처럼 중요한 판단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일이 생기기 어렵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민주주의로는 일이 되지 않는다든가 민주주의가 발전을 촉진하지 못한다며 곤혹스러움을 항변하기도 한다.”(윌리엄 이스털리 <전문가의 독재>)

 

지금 바닥을 기고 있는 경제는 민주주의 후퇴와 박근혜 정부 무능의 결합에서 비롯됐다. 오르는 전셋값을 막아달라고 하니 ‘억울하면 집 사라’라는 대책을, 정규직을 늘리라는 요구에 ‘시간제 일자리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려달라는 데는 꿈적도 않더니, 1억원이 넘는 급여를 받는 장관이나 금융기관장 등 고액연봉직은 “양심도 없이”(심상정 정의당 대표) 임금피크제를 쏙 빠져나갔다. 오발탄도 이런 오발탄이 없다. 일자리 부족과 1300조원의 가계부채로 서민들의 지갑이 꽁꽁 닫혔고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했다. 박근혜 탄핵 전 3년9개월은 경제위기 경고음의 연속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가 조금이나마 왜 그랬는지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가족이 죽을낍니더.” 영화 <판도라>에서 안전을 장담하던 정부, (원전)기업, 전문가들은 사고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사고 처리는 부상당한 원전 하청업체 직원과 소방대원들의 몫이었다. 탄핵 정국에서도 정부와 기업들은 여전히 경제성장을 위한 일사불란한 지원책밖에 없는 ‘박정희식 처방전’에만 기대고 있다. 규제완화와 ‘쉬운 해고’ 등을 되뇌고, 투자심리가 위축된다며 재벌 총수의 안위에 목을 매고 있다. 지금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에는 국가주도·재벌중심의 구시대 낡은 경제질서로 돌아가는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광장에 모인 촛불에 담긴 경제개혁의 요구를 구현할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게 나라냐”며 탄핵을 성취한 자신감은 시름시름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를 일으켜 세울 엔진이 될 수 있다. 단언컨대 탄핵은 경제에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그것도 아주 절호의 기회다.

 

산업부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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