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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조카 장시호의 청문회 출석 소식을 다룬 기사도 어김없이 그 단어로 도배됐다. 의존명사 ‘년’이다. ‘닭년’ ‘무당년’ ‘미친년’…. 병신년(丙申年)을 앞둔 지난해 말부터 박근혜 관련 기사 댓글 서너 개 중 하나꼴로 ‘병신(病身)년’이란 욕이 들어갔다. “때론 언어가 의식과 행동을 규정한다”며 병신년 같은 말을 쓰지 않겠다는 지난해 12월31일 민주노총 성명의 울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의 범죄 혐의가 짙어질수록 욕설의 빈도는 높아지고, 강도는 세졌다.

‘년’은 11월5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2차 범국민행동’ 때 광장으로도 나왔다. 주최 측 무대 위아래에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저잣거리 아녀자” “강남 아줌마” 같은 말이 터져나왔다. ‘병신년’도 빠지지 않았다. 권력에 대한 분노와 결합된 혐오 발화는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다.

미국에서 흑인 여성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다고 치자. 퇴진에 뜻을 같이하는 흑인과 여성이 절반 이상 모인 집회에서 백인 남성들이 ‘비치(bitch·개 같은 년)’니 ‘니거(nigger·깜둥이)’니 욕을 내뱉는다. 니거와 비치가 정당한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년’에 대해서도 그래야 한다.

여성단체들은 여성과 장애인을 비하·경멸·조롱하는 명백한 혐오를 비판했다. “박근혜를 몰아내고, 여성·소수자 차별을 중지시키자”는 슬로건을 내건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무대 안팎에서 벌어진 일을 사과했다. 평등집회 가이드라인도 배포했다. 광장의 혐오는 줄었지만, 온라인은 여전하다.

‘놈’은 되고, ‘년’은 왜 안되나? ‘욕설의 성평등.’ 가장 흔한 반론이다. ‘년’과 ‘놈’은 각각 여자와 남자를 낮추거나 욕하여 이르는 말이다. ‘놈’의 뜻엔 ‘년’엔 없는 게 있는데 바로 ‘남자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이다. 사전의 용례 “저기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놈이 제 둘째 아이입니다”의 ‘놈’ 자리에 ‘년’을 넣어 쓸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사전은 ‘년’의 함의를 다 적어놓지 못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조홍식 역)에서 “남자가 모든 암컷들을 한꺼번에 여자 속에 던져버렸다”며 적시한 “참을성이 없고, 교활하고, 어리석고, 음탕하고, 잔인하고, 비굴한” 모든 암컷들이 ‘년’에도 들어 있다.

국정농단 시국에 다시 불거진 여성혐오는 범죄자와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연대책임을 지웠던 연좌제의 폭력과도 같다. 주요 남성 정치인들이 “광장은 광장 방식으로, 국회는 의회 방식으로” “명예로운 퇴진”을 말할 때 박근혜 수사와 구속을 앞서 외쳤던 여성들과 박근혜를 오로지 여성성 하나로 싸잡아 비난하는 게 타당할까. 그 모든 부정과 무능을 ‘닭년’과 ‘무당년’의 짓으로 환원하면 재벌 지배, 노동자·농민 탄압, 소외 현상, 관료 부패, 역사왜곡, 한반도 위기 같은 문제는 가려지기 쉽다. ‘중차대한 시국에 못된 권력에 욕 좀 한 걸 갖고 왜 시비냐’ 같은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프레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여성·성소수자·호남·장애인·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조개 줍기’ 프레임에 가둬버리면, 멀리는 군사독재 정권부터 신자유주의 정권을 거쳐 9년째를 맞은 보수 정권까지 켜켜이 쌓인 체제 곳곳의 환부를 제대로 들어내지 못한다. 232만의 분노가 결집된 촛불 광장에서 언뜻 국지적으로 보이는 여성혐오와의 싸움은 그래서 중요하다. 성별·지역·세대·직업을 초월해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제각각 분출한 분노와 절망의 목소리, 변화의 의지를 되새기는 일은 ‘박근혜 퇴진’ 이후 어떤 미래·체제를 만들지와 이어지는 문제다.

최소한의 존중과 연대, 더 나은 세상에 관한 고민이 없다면, 국회가 탄핵을 결의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더라도, 정권을 바꾼다 한들 박근혜·최순실만 사라지고 나머지는 그대로인 세상일 수 있다.

김종목 모바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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