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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짧을수록 좋더라. 버스든 지하철이든 정거장은 시 한 편 읽기에 딱 알맞은 간격이다. 그러니 도로마다에는 가로수와 간판과 더불어 시집도 빼곡하게 배열되어 있는 셈이겠다. 그제 아침 출근길의 라디오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연기’가 튀어나왔다. 아나운서의 낭랑한 음성에 실린 그 시는 마지막 구절이 내가 기억하여 외우는 것과 사뭇 달랐다. 황량과 적막의 차이. 지나간 것이라고 쉽게 관대한 건 아니겠지만 시에 관한 한 나로서는 오늘보다 옛날이 더 좋았다.
산에 다니면서 꽃도 꽃이지만 꽃이 처한 사정이나 사연에 주목을 해왔다. 몇 해 전 태백산을 다녀오다가 맞닥뜨린 풍경 속에서 대학시절에 만났던 ‘연기’를 다시 만났으니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 이윽고 도시락을 다시 빈 도시락으로 만든 뒤 하산하는 길이었다. 오전과 거의 비슷한 동작을 되풀이하면서 거의 다 내려오자 백단사 근처의 약수암이 나타났다. 나뭇가지 사이로 요사채가 보이고 뭉클뭉클 피어나는 흰 연기가 공중에 뚜렷했다. 좁은 함석 굴뚝을 빠져나와 하늘의 깊이를 재면서 더욱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흰 연기. 문득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기막힌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약수암에는 호수 대신 작은 개울이 흐르고 물푸레나무, 귀룽나무, 고광나무, 물참대가 줄지어 자란다. 누군가 전지가위로 물참대의 마른 줄기 끝을 조심스레 잘라 함께 공부하였다. “이 물참대의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어요!” 과연 물기를 잃고 말라가는 줄기 안에 뻥 뚫린 구멍이 있고 그 구멍 너머를 오래 더듬었던 기억.
출근길에 만난 시 하나가 여러 기억을 소환했다. 연기는 안과 밖을 구별할 줄 아는가 보다. 그러기에 지금 저 멀리 여의도 어느 건물에서 저렇게 기를 쓰고 위로 오르지 않겠는가.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시 한 편이 그려내는 적막한 공간에 젖어들면서 물참대 가지의 빈 구멍을 생각하며 자유로의 빈 구멍 속으로 달려나갔다. 물참대,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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