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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따뜻하더니 잠깐 맹렬했다가 아차 하는 순간 쌀쌀맞기 그지없는 애인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서해로 퐁당 빠질 때는 언제고, 또다시 꿋꿋하게 떠오른다. 그런 해에게 참 대단하다는 말을 붙여준다면, 그가 매일 펼쳐놓은 좌판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게는 수수께끼라는 말이 참 어울릴 것 같다. 삶은 수수께끼. 이 네 글자가 없었더라면 삶이라는 이 난해한 현상을 어떻게 하루인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타구니에서 걸음을 꺼내어 나를 사방으로 데리고 다니는 다리와 그런 다리의 능력을 이용하여 그 어디로 나를 또 건너게 하는 다리는 이름이 같다. 왜 다리는 다리이고 다리라 하는가. 더러 그런 시시한 궁리도 해가면서 모처럼 부산여행을 겸해 희귀식물조사대에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거문도에서 발견되어 거문도닥나무라고 칭호를 얻은 나무의 서식지인 기장의 어느 해변을 탐사하는 길. 가는 길목에 잠깐 바닷가 절에 들렀다.

대개 절은 다리 한두 개는 건너고 나서야 일주문 통과를 허락한다. 해남의 어느 큰 절의 입구에 피안교가 있다. 다리 건너 불국토로 들어가 절이 마련해 준 그 절절한 불심에 흥건히 젖었다가 다시 피안교를 곱다시 건너야 했다. 나의 아쉬움은 그것이었다. 산으로 들었다가 산에서 나갈 때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왜 다리의 이름은 하나인가. 왜 그대로 피안교인가.

그런 총중에 거문도닥나무 찾으러 가다가 잠깐 들른 기장의 해동용궁사에서 모처럼 기회를 얻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가 절’답게 용궁으로 들어가듯 해수면 가까이 계단을 내려가는데 잘록한 문 하나가 있어 속세와 불국토의 경계가 된다. 들어갈 때는 만복문이더니 나올 때는 등룡문이다. 같은 문인데 들어갈 때와 나갈 때 그 이름이 사뭇 다르다. 생명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말을 믿으며 파도의 응원가를 들으며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오르자니 등룡하는 기분? 매일 떠오르는 해도 어쩌면 이런 기분일까! 그런 허튼수작도 해보면서 기장 대변항의 해변에서 거문도닥나무를 마침내 만나 각별하게 오래 쓰다듬은 하루. 거문도닥나무, 팥꽃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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