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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교수·정치학


 남북관계는 아예 지쳐버렸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갈등과 대결을 지속하다가 천안함 사태로 전면파탄에 이르더니 급기야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관심조차 없는 무덤덤한 절연관계가 되어 버렸다. 남측은 북과의 대화와 협상이 귀찮기만 하고 북도 남측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이미 오래다.


 때마침 통일부가 발간한 ‘2010 통일백서’는 이 모든 걸 북한과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이 사실상 실패했고 북한은 긍정적 변화 대신 핵개발과 개혁개방 반대를 고수해왔다는 것이다. 만족할 만큼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리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햇볕정책의 문제이고 따라서 지금 이명박 정부가 고집하는 대북 강경정책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본시 햇볕정책은 애물단지 북한을 정상적인 북한으로 전환시키려는 어렵고 힘든 노력이었다. 말 안듣고 속 썩이는 북한을 화해협력과 관계확대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려는 현실적 노선이었다. 그러나 분단의 상대방을 대상으로 한 포용정책인 탓에 북한의 변화는 더디지만 흡족할 만큼 이뤄지지 않았고 남북관계는 우리 통제 밖의 북미관계 변수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남쪽에 급속히 통합될 우려 때문에 북은 적극적인 변화를 주저했고 북미관계 교착으로 북은 결국 핵실험을 하고 만 것이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2010sus 7월 2일 인천 중구 영진공사 보세창고에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의 인도적 대북지원물품이 쌓여있다. /경향신문 DB



 그럼에도 햇볕정책 10년은 남북관계 지속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지켜냈고 어렵고 힘들지만 점진적인 북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통일백서가 비판하고 있는 북한불변과 핵개발은 따라서 햇볕정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분단체제와 한반도라는 특수성에서 배태된 정책적 환경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즉 햇볕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한국판 햇볕정책의 지난함을 반증한 것이었다.


 이를 무시한 채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의 규정 하에 햇볕정책의 실패를 단정하고 자기식의 북한다루기에 나섰다. 관계를 전면 중단하고 일관된 압박과 봉쇄를 통해 북의 변화와 굴복을 얻어내겠다는 접근방식이었다. 실패했다는 햇볕정책 대신 선택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과연 성공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지금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비판하는 과거 정부 시기보다 더욱 강경하고 고집스럽고 호전적이다. 2.13 프로세스마저 중단된 채 핵능력이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고 천안함에서 보이듯 대남 군사도발과 위협을 서슴치 않고 있으며 개혁개방과 정반대의 정책노선을 고집하고 있다.


 압박만 하면 북이 아플 것이고 그래서 결국 북이 굴복할 것이고 끝내는 북이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3대 오해 속에 반포용의 대북강경정책을 지속했지만 결과는 기대와 전혀 다르다. 관계 중단과 대북 압박은 북을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중국으로 달려가게 만들었고 때문에 북은 굴복하는 게 아니라 켜켜이 대남 적개심을 키워가고 있고 임박한 붕괴가 아니라 3대 세습과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애초부터 가능하지도 않은 전제를 가지고 대북 압박에 나섬으로써 남북관계 파탄과 한반도 긴장고조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대북정책은 결국 애물단지 북한을 다루는 방법이다. 그만큼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다. 밉고 짜증난다고 감정대로 대할 경우 애물단지는 더욱 어긋나게 된다. 더디고 힘들지만 관계개선과 화해협력을 통해 애물단지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인내와 노력이 바로 햇볕정책이다. 대북강경정책은 북한변화는 고사하고 한반도 평화마저 포기하는 최악의 선택이다. 지금의 망실된 남북관계에 대해 훗날 통일백서는 누구 탓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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