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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첫 위기(?)를 맞고 있다. 지지층이든, 아니든 국정 지지율 ‘60%’ 어름에 시끌벅적하다. 지지층이 염려를 담은 분석이라면, 반대층은 ‘거 봐라’는 투로 예언의 실현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여전히 국민 3명 중 2명이 지지한다. 70% 안팎을 비행하던 그간 지지율이 지나치게 높았을 뿐 지금도 낮은 게 아니다. 이처럼 ‘고공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를 특징짓는 열쇳말의 하나고, 그 때문에 작은 흔들림조차 파문을 그려내는 ‘지지율의 함정’과도 같은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간 ‘지지율 정치’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국민이 외교안보 디딤돌이자 이정표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민론’이다. 여론을 기준 삼기 가장 어려운 외교에서조차 그의 기준점은 ‘국민’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80분 남짓한 회견 동안 ‘국민’만 64회 되풀이했다. 그다음 많았던 ‘평화’가 15회임을 감안하면 압도이다. 문 대통령은 회견 내내 “국민의 뜻과 요구를 (국정의) 나침반 삼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치인의 “애국” 발언을 100% 믿지 못하듯, 권력의 ‘국민’ 또한 얼마만큼의 진정성으로 이해해야 할지엔 늘 의문부호가 붙는다. 야당의 ‘포퓰리즘’ ‘쇼통’ 공격은 그 약한 틈을 파고든 것이기도 하다.

실상 문재인 정부의 여론관은 정치적·정신적 뿌리라 할 노무현 정부와 비교해도 다르다.

“여론조사 속에는 비전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기에, 또 비전을 달성할 전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여론은 참고자료로 해야지 쫓아가다 보면 장기적 과제를 잊어버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참모들에게 한 당부다. 그에게 여론은 “몇발짝 앞서 나갈까 하는 참고자료”였다. 때로 여론에 한참 앞서 불화를 감수하고 깃발을 들었던 사례는 ‘증세론’ 등 한둘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새 시대의 맏이’를 꿈꾼 지사(志士)적 정치인이라면, 문 대통령은 국민 여론과의 길항에 더욱 예민한 현실적 권력이다. 노 전 대통령이 때로 토론하고 설득하려 했다면, 문 대통령은 시민의 엄호를 받으며 시민과 함께 움직이려 한다. 노 대통령이 ‘제도’의 깃발을 들고 변혁의 첫 열에서 선다면, 문 대통령은 더디더라도 문화·풍토의 변화를 겨냥한다. 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대통령 때 법과 시스템을 바꾸면 사회가 바뀔줄 알았는데 정작 보수정권으로 바뀌니 소용이 없더라. 그래서 지금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기본적 풍토의 변화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여권 인사에게 ‘도대체 노무현 정치와 문재인 정치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문재인 정치는 다수의 세력을 가졌다”였다. 문재인 정부는 다수를 추구한다. 비전을 비슷하게라도 성사시키거나 꺼내기 위한 ‘전략’을 추구한다. 여권 한 핵심 관계자는 이를 “기반을 넓히는 것”이라고도 했다.

한 친노·친문 인사는 “노무현 정부 때 낮은 지지율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크다. 지지율이 낮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노무현은 성패를 떠난 꿈을 꾸었지만, 문재인은 꿈 이전에 ‘실패할 수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권력의 출발점이다.

한 친노 인사는 “노 대통령은 기승전결 완벽하지 않으면 손을 안 댄다. 문 대통령은 기승전결 완결도가 없어도 일단 뛰어들어 현안을 해결한다. 그리고 급한 일일수록 국회에 안 맡긴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점에서 문재인 정부 국정에 어느 진영도 ‘100% 만족’은 어려울 것 같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처럼 우리 사회 의제들을 차근차근 모두 국정 메뉴에 올리겠지만, 그 결론은 공약대로만은 아닐 수 있다. 정권은 방향과 목표를 제시할 수 있을 뿐, 최종 선택은 국민 몫이라는 것이다. 향후 문재인 정부와 진보층의 ‘불화’에 대한 염려는 그래서 나온다.

현 여권의 ‘정권 재창출 열망’에서 지지율 정치의 동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과거 ‘정권 뺏겨도 낭패날 일은 없다’던 오만의 낭패감을 절절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수와 더디더라도 문화의 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시민정치의 완성이 지금 정부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이제 첫 위기의 지점에서 ‘지지율 정치’는 새 좌표를 찾아야할 과제에 직면했다. 그간 고공 지지율은 실상 전 정권 적폐의 반사이익과 촛불혁명의 지지율일뿐 문재인 정부가 증명한 지지율은 아니었다. 부동산 등 난제들에서 ‘국정 능력→지지율→국정 동력’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선순환 궤도의 좌표를 제시해야할 시점이다.

긴 호흡에서 문재인의 ‘현실’이 노무현의 ‘꿈’과 만나 꽃피는 접점은 결국 ‘제도’다. 둘 모두 지향점은 여론과 정치적 다수가 일치하는 정치체제의 제도화에 있기 때문이다. 개헌이 그 한 통로일 수 있으며, 협치를 넘는 연정 문제는 이 진영에서 끊임없이 제기될 질문이다. 모두 ‘권력은 유한하지만, 공동체는 무한하다’는 정치의 궁극적 경구에 다가가는 길이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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