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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면 잡을 수 없는 것. 시간이 그렇다. 특히 정치 영역에서 타이밍은 필수적이다. 속도가 필요할 때도 있다.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문제만 봐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총선을 9일 앞두고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재난지원금 계획을 발표하고, ‘소득 하위 70% 지급’으로 구체화된 지 엿새 뒤다. 건강보험료 기준 소득 상위 30%를 뺀 70%에게 주는 것이 재난지원금이란 취지에서 적절하지 않고, 70% 경계선에 있는 이들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지적이 나온 터였다. 

민주당은 격전지를 돌면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켜주면 100%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드리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은 ‘180석 압승’으로 끝난 총선 다음날에도 이를 재확인했다. 집권여당이 총선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약속 이행이 발빠르게 진행될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재난지원금 100% 지급안은 정부·여당이 조율한 사안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딴판이었다. 기획재정부가 100% 지급안에 대놓고 반대했다. 재정건전성 유지와 별도 추경 편성 대비 필요성을 이유로 들며 70% 지급안을 고집했다. 청와대는 ‘여야 합의를 존중하겠다’며 한발 물러나 있었다. 여당과 정부가 충돌했다. 총선 이틀 뒤 이해찬·이낙연·이인영 등 ‘총선 사령탑’ 3명과 문 대통령이 만찬을 하고, 지난 19일 고위 당·정·청 회의를 했는데도 말이다.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겸손’을 얘기하고 ‘코로나 국난 극복’을 다짐했지만 ‘우리편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총선 후 재난지원금 문제가 가장 먼저 불거질 거라고 알았을 텐데도 이렇게 방치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여당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됐다. 당·정·청이 ‘전 국민 지급, 기부 유도’에 합의한 것은 총선 일주일이 지나서다. 뒤늦게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움직인 결과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은 복지정책이 아니라 재난대책 성격이다. 일반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재난지원금의 효과를 높이려면 속도가 요구된다. 코로나19 방역은 과감하고 적극적 조치로 세계적 찬사를 받지만, 국민 생계 지원 대책은 너무 느리다. 미국과 일본은 재난지원금 지원 계획을 발표한 지 각각 28일, 15일 만에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국민 1인당 지급액을 발표 당시 1000달러(약 123만원)에서 1200달러로 늘렸고, 일본은 전체 5800만가구 중 1000만가구에 30만엔(약 340만원) 지원에서, 1인당 10만엔 지급으로 수정했다. 당·정·청 합의안도 미래통합당이 총선 당시 ‘1인당 50만원 지원’ 약속을 뒤집고 반대해 언제 처리될지 알 수 없다. 이미 광역단체 17곳 중 13곳에서, 기초단체 40여곳에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여당의 총선 압승에 문 대통령의 일성은 ‘책임’이었다. 국정의 최고결정권자는 대통령이지만, 여당도 국정운영의 한 축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이 별개로 나눠지지 않는다. ‘180석 여당’은 임기 2년 남은 문재인 정부의 굳건한 힘이다. 특히, 야당 탓할 수 없는 무한책임의 무게이기도 하다. 총선 민심에 오로지 성과로 답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해찬 대표가 21대 초선 의원들에게 “우리의 가장 급한 책무는 코로나19와 경제위기의 성공적 극복, 코로나19 이후 경제·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법·제도 개혁”이라고 당부한 것도 그런 뜻을 게다. “막중한 책임과 서늘한 두려움”을 느낀다고도 했다.

촛불민심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 전반기에 민주당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입법 성과는 손에 꼽는 수준으로 미미했다. 당·청의 일사불란함을 강조했지만, 청와대와 정부를 견인하지 못하고 몸사리기에 급급했다는 비판도 많았다. 

이 대표는 “정권을 빼앗기고 나니 우리가 만든 정책노선이 아주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봤다”고 했다. “20년은 해야 정책이 뿌리를 내려서 잘 갈 수 있다”는 ‘20년 집권론’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려면 담대한 비전과 구상을 정책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민주당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처를 주문하는 민심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17대 총선 152석에서 4년 만에 81석으로 추락한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무대가 열린다. 거대 여당의 존재감을 드러내보라.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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